인간문명 바라본 고양이의 시각
남성 중심 세계관 신랄하게 조롱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타자의 시각을 도입, 인간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이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적절한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해 온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가 이번엔 신작 장편소설 <고양이>로 한국 팬을 만난다.

이 소설은 그의 출세작 <개미>를 떠올리게 한다. 보통의 인간이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작은 존재인 개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처럼 <고양이>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고양이의 시각에서 인간의 문명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원제는 Demain les chats(내일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미래는 고양이에게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흔히 우리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이상하고 추한 면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소설은 인간의 곁에서 삶을 함께하는 다른 종족인 고양이 눈으로 보면 인간의 삶이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테러가 일상화되고 내전이 시작된 프랑스 파리다. 황폐해진 도시에는 페스트가 창궐하고 사람들은 사나운 쥐 떼들을 피해 도시를 떠난다. 쥐 떼에 점령당한 도시에서 도망친 고양이들이 불로뉴 숲에 모여, 고양이 군대를 만들어 뺏긴 도시를 탈환하기로 한다. 페스트의 확산과 쥐 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고양이들은 센강의 시뉴섬으로 향하지만, 쥐 떼의 접근을 차단하려면 섬으로 통하는 다리를 폭파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간의 도움이 절실한데…. 고양이와 인간은 서로 소통에 성공하고, 쥐 떼들의 공격과 페스트, 전쟁의 틈새에서 고양이와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다소 황당한 듯한 스토리다. 하지만 베르베르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소통과 협력을 얘기한다. 단지 인간의 어떤 흥밋거리나 지식의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전쟁과 테러 등 자기 파괴적인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이 어쩌면 여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울러 베르베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책 전체에서 남성 중심의 세계관과 수컷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조롱한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다룰 줄 알고, 과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의 에피소드들을 유머러스하게 버무리는 베르베르. 그의 솜씨는 여전하다.

부산일보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