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의 아오야마 신지 
'은판 위의 여인' 구로사와 기요시 
세계적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



'경쾌하고도 스피디하게 흐르는 마치 가슴을 파고드는 활극' 2000년 영화 '유레카'의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수상으로 세계적 관심을 모으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영화감독 아오야마 신지의 말이다. 그가 말한 활극에 참여한 이는 아오야마 감독 본인을 비롯해 세계적인 영화비평가로 도쿄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수많은 감독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하스미 시게히코, 2016년 영화 '은판 위의 여인'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다. 이들이 모여 '무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정담(鼎談)을 처음 가진 것은 2008년. '문제 제기하는 편에 서 있다가 자폭하는 역할'을 맡은 아오야마 감독의 제안으로 전격 이뤄졌다.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사이인 이들은 2년간 10회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대화 기록을 정리한 책이 <영화장화 映畵長話>다.
 
2011년 일본에서 선보인 이번 책은 반년에 걸친 꾸준한 설득에 번역과 교정에만 1년여를 쏟아부은 끝에 올해 국내서 처음 발간됐다.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로 선정된 데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진중한 영화 세계를 국내에 적극 알리고 싶다는 출판사의 의지가 국내 발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에 대한 긴 이야기라고 밝혔듯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흥미진진하다. 최근에 어떤 재미있는 영화를 봤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문을 여는 책은 이들 영화인이 가진 다양한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금 영화 세계의 양극단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장 뤼크 고다르가 있는 건 아닌지 여겨진다 …이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뒤는 어떻게 될는지'라는 구로사와 감독의 말에 아오야마 감독이 '그 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가 스티븐 스필버그이지 않을까'라며 화답하고 하스미 평론가가 미국의 블록버스터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활극' 답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최근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루 얻은 '레디 플레이어 원'을 내놓는 등 여전히 세계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스필버그의 행보를 예견이라도 한 듯한 대목들은 이들의 혜안을 새삼 실감케 한다.

 
대화의 끝이 궁금해지는 대목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예컨대 'M. 나이트 샤말란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제자로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비디오카메라냐 디지털카메라냐에 이어 2시간이 넘는 영화가 과연 좋은지 등 다양한 주제의 질문과 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주제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가운데 영화의 기본인 '숏'(장면)으로 귀결되는 대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무국적성과 함께 오늘날 감독들이 대중의 기호에 맞게 영화를 찍어낼 수밖에 없는 환경 등의 내용은 한국 영화계의 현실도 돌아보게 한다.
 
책을 번역한 조정민 부경대 일어일문학부 교수는 하스미 평론가의 말을 토대로 '영화는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던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영화를 마주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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