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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필 선언… 침묵의 바다로 떠난 소설가문학의 향기 (9) 순천 문학관 ①김승옥관
  • 수정 2018.06.06 10:04
  • 게재 2018.06.06 09:57
  • 호수 376
  • 15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시간도 삶과 더불어 안개가 되었다"는 김승옥의 문학세계.




4·19 세대 정서 그린 '무진기행'
글 쓰는 사람에겐 숨 막히던 시대

작가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소설 떠나 시나리오 작가 경력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에 자폐의 길로
실어증 안개에서 벗어날 날 기다려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간절히 부르게 하는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다."
 
소설가 김승옥의 대표작, 무진기행의 무대로 가는 길. 갈대숲이 우거진 마을의 방죽길을 지나 침묵의 바다로 떠난 소설가를 찾아가는 길은, 1960년대 청년의 감성을 표현한 '무진기행'을 되새기는 여정이었다.
 
"소설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돈과 권력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된다. 동시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어서도 안된다. 소설가는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갯벌을 매립한 오지에 황토로 지은 문학관 입구로 들어가면 작가의 어록이 눈길을 끈다. 깔끔한 외모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김승옥의 사진이 걸려 있는 연보에는 작가의 삶이 시대별로 적혀있다.
 

▲ '무진기행'의 배경이 된 순천만 갯벌 매립지에 자리잡은 김승옥 문학관.
▲ KBS 순천방송국이 제정한 김승옥 문학상을 소개하는 벽보.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8·15 광복과 더불어 순천으로 돌아온 후 3년 만에 터진 여순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작가에겐 고등학교 시절까지 성장기를 보냈던 순천 앞바다와 갯벌이 마음의 고향이자 창작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4·19혁명이 나던 해에 대학생이 되었지만, 곧바로 들이닥친 5·16쿠데타로 좌절을 맛보아야 했던 불행한 세대. 그런 아픔 속에서 그 시대 젊은이들이 겪었던 무력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작품이 대표작 '무진기행'이라고 했다.
 
소설이 말해주듯 작가는 무언가 새로운 출발이 필요할 때마다 무진을 찾았다. 지도에는 없지만, 작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안개 낀 고향마을 무진을 찾아간 것이다. '어제 내린 비', '겨울 여자', '영자의 전성시대'….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1970년대 충무로를 주름잡았던 영화 포스트들이 전시되어 있다.

▲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제작된 영화 포스터.

그 무렵 소설을 떠나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했던 김승옥이 극본을 쓴 영화들을 소개하는 포스트라고 했다.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절, 도시의 응달에서 퇴폐적인 유흥문화가 싹트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때 그 시절, 사회적 병리 현상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시도였는지는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만으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대목이 많아 논란을 빚었던 영화들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또 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하지만 소설가 김승옥의 외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1977년 중편 소설 '서울의 달빛'을 발표하면서 본업인 소설가로 돌아온 것이다. 문단의 대선배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권유로 이뤄진 일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이때도 작가 김승옥은 무진을 찾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그랬던 소설가 김승옥이 1980년 5월, 절필을 선언한다.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작가가 당시 동아일보에 연재 중이던 소설 '먼지의 방'을 15일 만에 중단하면서, '자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겐 숨이 막히는 시대"라는 말만 남긴 채….
 
그렇게 기나긴 ‘침묵의 바다’로 떠나버린 소설가 김승옥. 이후 38년이란 세월 동안 ‘실어증의 안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해설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전시실 끝머리에는 작가 김승옥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연된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때마다 무진을 찾았던 작가 김승옥에겐 소설만이 희망이었다."
 
잔잔한 물결처럼 들려오는 나래이터의 목소리. 그가 들려준 안개 낀 마을, ‘무진’이라는 단어에서 희망의 불씨가 느껴진다. 
 
"침묵의 안개에서 벗어나 소설가로 돌아올 김승옥. 그는 과연 어디쯤 오고 있을까."
 
김해뉴스 /순천=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전남 순천시 교량도 114.
남해고속도로(152㎞)를 타고가다 순천만길(3.7㎞)로 갈아타면 순천문학관에 도착한다. 약 2시간 10분 소요.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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