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련 김해뉴스 독자위원·덕정초등학교 교사

"<김해 도심에 고라니·멧돼지 출몰 이유는>이라는 기사를 읽고, 예전에 아빠가 퇴근하는 길에 고라니가 갑자기 나타나 차와 부딪쳐 많이 놀라고 위험할 뻔했다는 얘기가 생각났어요. 더 이상 사람도 동물도 위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문에는 사실문장은 많은 것 같은데, 의견문장은 찾기가 어려워요. <우산의 덜미>라는 시를 읽고, 고마운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특히 우리 엄마, 언제나 나의 우산이 되어주죠. 내가 힘들고 슬플 때 나에게 사랑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우리 선생님, 소중한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고 멋져요. <우리 동네 위험한 곳 너무 많아요>를 읽고, 우리도 화정초처럼 '아동안전지도'를 제작해서 위험한 곳을 알면 좋겠어요. 또 우리 동네 위험한 곳을 기사로 써서 학급신문에 실어보고 싶어요."

이상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의 신문 읽는 소리다.

21세기 교육패러다임이 스마트,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바뀌고 있는 이 시대에 왜 굳이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힐까?

필자는 20대에 아르바이트로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나 '신문이요' 외치는 소리, 신문이 '퍽'하고 떨어지는 소리 등은 아침을 깨우는 대표적인 소리였다. 신문이 배달되면 지식인뿐만 아니라 각 가정의 아버지부터 엄마, 아이들까지 신문에서 각자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얻고 또 다양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 스마트 폰이 대중화 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각종 포털 사이트의 화면으로 뉴스나 정보를 검색한다. 포털 사이트로 보는 뉴스와 정보는 신문과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하고 화려하다. 언뜻 보면 아주 편리하고 신속하고 친절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포털 사이트마다 다양하게 설명해주고 해석해주고 비판까지 해주는 기사들에 익숙해지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편견이나 아집에 빠지기도 쉽다. 이것뿐인가, 한 번 클릭한 기사는 어느 순간 비슷한 유형의 기사들로 실시간 업데이트 되면서 생각할 틈도 없이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기사를 찾게 만든다.

우리는 뉴스나 정보를 접할 때 스스로 선택하고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가 사실인지 의견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하고, 뉴스를 제공하는 의도를 파악해야 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문은 다른 매체들에 비해 선택적으로 다양하고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또 신문은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객관적이고 교육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객관성도 사실에 대한 객관성일 뿐, 사실을 해석하고 보도하는 기자나 신문사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는 미디어 시대에는 지식 정보 처리 능력과 함께 무엇보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뉴스나 정보의 사실여부, 옳고 그름, 감추어진 의미 등을 찾아내고 판단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신문 속에 펼쳐진 다양한 세상의 텍스트를 읽어 가면서 이해하고, 표현하고, 토의하고, 판단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들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이 생긴다. 더 나아가 새로운 뉴스나 정보를 생산해 내는 창의적 사고력도 길러진다.

10대에 접어든 초등학교 4학년, 지식과 지혜를 쌓고 자신을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본격적인 배움의 시기다. 필자는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으로 자기 나름의 생각을 키워가기를 바란다. 자기 나름의 생각을 키워가는 아이들에게 신문은 또 다른 친구이자 스승으로 다가가 삶을 더욱 아름답고 정의롭게 이끌어 줄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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