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 가을의 어느 날, 창밖으로 스쳐 지나던 낮은 산언저리마다 주홍빛으로 익어 가던 그 많은 감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가 어디야? 함께 여행하던 동행에게 물었죠. 진영이라고 하더군요. 진영이라는 지명이 가슴에 확 꽂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청량한 바람도 좋았지만 마치 주홍색 보석처럼 빛나던 감이 지금도 눈앞에 선연합니다. 그 뒤로 '진영단감'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의 기억이 나곤 합니다. 진영을 전국적으로 알린 명물이고 특산물이잖아요. 진영단감이 나올 때가 되었나요? 다시 한번 그 늦가을의 기억을 찾아 가 보고 싶어지네요. 바쁘면 택배 주문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일 년에 딱 한번 지금 맛볼 수 있는 진영단감 아닙니까!" 서울에 사는 김영철(58) 씨의 추억이다.

▲ 단감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연평균 기온과 지형을 가진 진영의 과수원에서 익어가는 '진영단감'이 수확을 앞두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진영단감이 익어갈 무렵 진영을 방문한 외지인들 중에는 김 씨처럼 그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진영의 산들이 온통 감 과수원이었던 때, 가을과 함께 익어 가던 진영단감은 그 자체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진영은 단감을 재배하기에 최적지이다. 진영의 연평균 기온은 14℃를 유지한다. 난지과수(暖地果樹:따뜻한 지방에서 열매를 얻기 위해 가꾸는 나무)인 단감을 재배하기에 적절한 기온이다. 산이 병풍처럼 동서로 가로 지르며 주산지대를 감싸고 있는 지형 역시 남쪽지방에서 흔히 받고 있는 해풍 및 태풍으로부터 과실을 보호할 수 있다. 토양의 보수력이 뛰어나 가뭄 피해도 덜 받는 지역이다. 특히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타 지역보다 늦어 생육기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10일 정도 길다. 일조량이 풍부한 진영은 단감을 재배하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다. 과실의 당도 및 무기성분 함량이 월등하게 뛰어나 오래전부터 단감의 명산지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단감 시배지 신용리, 가장 오래 된 나무 60여 그루 비롯 국내 단감 대표상품 생산

그것을 일찌감치 알아 챈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진영의 자연조건이 '부유'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안 일본인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기후현 원산의 감 품종 '부유'를 들여왔다. 진영은 우리나라 단감의 시배지인 셈이다.
 
진영 신용리에는 단감 시배지가 있다. 시배지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읽어보자. "이곳은 1927년 단감나무를 처음으로 식재한 곳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감나무 60여그루가 재배되고 있는 우리나라 단감의 첫 재배지입니다. 2008. 11 김해시장."
 
▲ 시배지농장 조영환 씨(왼쪽부터)와 '진영폴리페놀단감연구회' 심재균 회장·조홍래 총무가 한 해 감농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재 이 시배지는 조영환(47) 씨가 맡아 감 농사를 짓고 있다. 감나무는 25~30년 수령일 때 제일 좋은 과실을 맺는다. 시배지의 나무들은 나이가 많은 노목이라 전정작업이 더 까다롭다.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나무는 수세(樹勢)가 쇠약해져서 결실도 불량해지기 쉽다. 그래서 굵은 가지를 잘라내고 세력이 강한 가지와 교체하는 갱신전정(更新剪定)을 해야 한다. 조 씨는 "일이 몇 배는 더 힘들고 까다롭지만, 시배지에서 단감 농사를 짓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며 과수원을 둘러 본다.


황산화물질 폴리페놀 함량 높여 당도·빛깔·맛 최고 품질 자랑
진영단감은 지금 진화 중이다.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 함량을 높여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단감 생산을 위해 '진영폴리페놀단감연구회' 회장 심재균(47) 씨 등 8명의 회원이 수 년째 노력 중이다. 심 씨의 미성농장은 대창 마을의 산자락에 있다.
 
취재 약속을 잡은 것이 오전이었다. 열시쯤 과수원에 도착했는데 심 씨는 벌써 몇 시간째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서너시가 되면 일어나 과수원에서 일을 시작하는 농부의 오전 시간은 보통사람들의 아침이었던 것을 기자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심 씨는 집안의 과수원을 맡아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감을 따고 나면, 바로 또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됩니다. 겨울 내내 전정작업과 퇴비를 줘야 합니다. 감나무 껍질도 벗겨줘야 해요. 감나무에 해가 되는 벌레가 껍질 속으로 파고 드는 걸 막아야 하거든요." 심 씨는 일년 내내 쉴 틈이 없다고 설명했다. 겨울 동안 준비작업을 하고, 4월 5일경이면 살균 살충을 위해 석회유황합제를 뿌린다. 잎이 나오고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적뢰' 작업을 한다. 결실을 좋게 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꽃봉오리가 너무 많이 달리지 않도록 솎아 조절하는 일이다. 5월 25일을 전후해 과수원에는 감꽃이 만개한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감으로 성장할 '유'가 나온다. 6월초부터 5개월 정도 자라 11월초에 감을 딴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과일을 수확해야 하는데, 진영은 다른 지역보다 서리가 늦게 내리는 땅이라 감은 더 오래 감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 있다. 서리가 무서워 미숙과를 따내지 않아도 된다. 이 기간 동안 진영단감은 당도, 색, 맛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숙성을 한다. 자기가 태어난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천혜의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지막까지 받고 나서야 탄생되는 것이 진영단감이다.
 
수확을 거둘 때까지는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까치 멧돼지가 호시탐탐 과수원을 노리고 있고, 최근에는 외래충인 '미국선녀벌레'도 극성이다. 농부들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과수원에 매달려 있다. 열두시 넘어서 랜턴을 들고 과수원을 돌며 작업을 하는 이도 많다.
 
▲ 조영환 씨가 단감 시배지 안내문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단감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심 씨의 과수원에 손님이 찾아왔다. '진영폴리페놀단감연구회(이하 단감연구회)' 총무를 맡고 있는 조홍래 씨다. 시배지농장의 조영환 씨도 왔다. 조홍래 씨는 단감연구회의 각종 자료가 담긴 파일을 펼쳐보이며, 펠리페놀 진영단감의 특성을 설명했다.
 
청송사과 등 과일을 비롯해 쌀에 이르기까지 폴리페놀 성분 함량을 높인 농산물은 최근 소비자들에게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반적인 감의 경우 폴리페놀 함량을 100% 기준으로 할 때, 단감연구회 8명 회원이 생산하는 진영단감은 130% 이상의 함량을 가지고 있다. 125% 이상이 되면 인정받을 수 있는 폴리페놀 재배방법 기준을 웃도는 수준이다.
 
조홍래 씨는 심 씨의 농장을 둘러보며 "감 많이 달았네"라고 말한다. '달렸다'가 아니라 '달았다'이다. 일 년 내내 농부와 함께 애쓴 감나무의 노고에 감사하는 말이 아닐까. 수확한 감을 상자에 담는 기분은 어떤지 물어 봤다. 조 씨가 "고이 기른 딸, 시집 보내는 마음이지요"라고 말하자 나머지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달 4일 '진영담감축제' 열려

11월 4일 '진영단감축제'가 열린다. 축제는 수확기와 맞물려, 정작 단감을 키워낸 농부들은 제대로 축제를 즐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시의 축제 예산 부족으로 2년에 한 번씩 축제를 열자는 말이 들려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상하기도 한다. 축제를 통해 진영단감을 더 널리 알리고, 마음껏 자랑도 할 수 있도록 김해의 모든 사람들이 나서야 할 것 같다.
 
진영의 감 과수원에서 가지가 휘어지도록 진영단감이 알차게 여물어 가고 있다. 한낮의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니 진영단감은 더 빛이 난다. 주홍빛 보석이 따로 없다. 농부도, 단감나무도 참으로 애 많이 썼다. 


■ 진영폴리페놀단감연구회

진영 폴리페놀 단감은 항산화물질 폴리페놀의 함량을 높이기 위해 졸참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식물추출액(NPGC)을 사용하여 전생육기에 처리하여 재배하는 감이다.
 
진영폴리페놀단감연구회는 2007년 단감으로서는 처음으로 NPGC를 농사에 활용했다. NPGC는 단감의 전생육기 동안 6회 살포하며, 재배 방법도 특허를 땄다. 폴리페놀은 우리 몸에 있는 활성산소를 무해한 물질로 바꿔주는 항산화물질이며, 노화와 다양한 질병에 대한 위험도를 낮추는 물질로 보고되고 있다.
 
연구회 회원들은 연구와 공부를 계속하고, 상호 간에 정보도 교환한다. 심재균 회장과 조홍래 총무를 비롯 안경수, 조현제, 조창열, 이은경, 김준효, 오영배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시배지농장 조영환 씨도 회원 가입 전 단계로 활동 중이고, 김해의 많은 단감 농부들이 폴리페놀 재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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