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 잡은 박경리기념관 앞마당.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던 작가의 모습이 동상으로 남아 있다.

 

▲ 작가 박경리 젊은 시절.

6·25 전쟁으로 남편·아들 잃은 미망인
사위 김지하는 유신 정권 때 사형선고 
 
유방암 수술, 가슴에 붕대 감고 집필
책상과 원고지, 펜 하나에 의지했던 삶
 
"작가는 스스로 자유로워야" 
만년 작품엔 허허로움 속 여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간 사람들의 '한'과 생명력'을 대하소설로 엮어낸 사람. 그 속에서 자연과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그려낸 작가 박경리를 기념하는 문학관은 통영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천형처럼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인생을 거세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은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가"
 
잔디밭이 조성된 문학관 마당으로 들어가면 두루마리 모양을 한 대리석에 작가의 '시'를 새겨 놓은 문학비가 있다. 정치 권력의 폭압에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는 절망을 딛고 일어선 '사마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일까. 
 
문학관 전시실로 들어가면 6·25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20대 중반부터 친정어머니와 딸을 키우며 살았던 작가의 연보가 걸려 있다. 그런 개인적인 체험 때문에 "전쟁 때 남편을 잃은 젊은 미망인이 작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는 해설이 이어진다. 
 

▲ 박경리 기념관 내부.

하지만 대표작 토지를 연재하던 1970년대 중반 무렵, 하나밖에 없는 사위 '김지하'가 반공법 위반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는 고통을 겪었던 사연은 기록에서 빠져 있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딸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은 사위가 인간적으로 원망스러웠던 때문일까.
 
비슷한 시기에 유방암 판정을 받은 작가가 수술을 받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 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집필을 계속했던 사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영화로 만든 ‘김약국의 딸들’.

이처럼 작가가 거의 목숨을 거는 자세로 집착했던 소설은, 과연 그녀의 삶에서 어떤 의미는 지니는 것일까.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작가가 남긴 '시'에서 드러나듯, 박경리에게 소설은 '그녀의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가와의 대화'라고 적힌 방이 있다. 작가가 사용하던 국어사전이 펼쳐진 책상과 장롱, 문갑 등이 가지런히 정돈된 방이다. 그 한구석에는 작가가 손수 바느질을 해가면서 옷을 지어 입었다는 재봉틀이 있다. 그 재봉틀을 돌려서 한 땀 한 땀 기억의 흔적들을 글줄로 새겨서 남긴 것이 작가의 소설이 아닐까.
 
'작가와의 대화' 뒤편 벽면에는 작가가 남긴 어록들이 적혀 있다. 
 
"문학은 삶의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스스로 자유로운 정신에서 작가가 탄생한다." "자연은 인성을 풍요롭게 하고, 감성을 길러주는 교사다." 
 

▲ 박경리의 숨결이 배어 있는 집필실. 작가는 이곳에서 나눈 대화를 바느질하듯 소설로 엮어 갔다.

치열한 사회의식으로,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부딪히면서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추구하던 시절에 남긴 어록이다.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지만, 보통사람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겁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 나온 문학관 마당. 

 
만년의 작가가 상대적으로 가벼워진 단어로 쓴 '시' 구절이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김해뉴스 /통영=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
△ 남해고속도로(10.9㎞)를 타고가다 남해안대로(54.6㎞)로 갈아탄 후 통영대진고속도로(16.5㎞)를 이용하면 된다. 약 1시간 40분 소요.

*관람 시간
① 오전 9시~오후 6시.
②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연휴 기간. 법정공휴일 다음날은 휴관.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