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 탐구하는 독창적 시도
전통적 건축 개념에 의문 제기
감시 쉽게 재설계된 도시 분석



'도시'라는 주제를 도둑의 시선으로 펼쳐 보이는 독창적인 이 책은 '스릴 넘치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는 평을 받는다. 저자는 기존의 건축가, 건물주, 거주민의 시각으로 바라본 건축 이야기에서 벗어나 도둑, 경찰, 건물관리인, 보안전문가 등 숨은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도시의 이면을 재조명한다.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눈으로 건축을 탐구하며, 저자는 독자들을 벽 속으로, 패닉룸으로, 지붕으로 이끌며 도시를 안내한다. 독자들은 저자의 안내를 따라 생전 가본 적 없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지금껏 생활해온 도시와 건물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건축가인 비야케 잉겔스는 "도둑과 은행털이범들을 직접 취재해 쓴 이 책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도시의 빈틈과 구멍을 드러내며, 도시 해커들의 눈을 통해 건축 환경을 재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둑들은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허락 없이 들락거리고, 건물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한계를 무시한다. 이 같은 도둑들의 방식은 건물마다 요구하는 특정 행동 방식과 건축적 관습에 얽매여 벽을 벽으로만 받아들이고, 통로가 안내하는 대로만 지나다녔던 우리들의 무의식 속 억압된 도시 사용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눈에 벽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필요한 위치에 문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손에서 공간은 가능한 모든 종류의 비건축적 수단을 통해 가로지를 수 있는 곳이 되고 활용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도둑들이 '침입 절도'에 건축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보다 구체적이다. 도둑들은 목표 건물에 침입하기 위해 부동산 사이트는 물론 소방 규정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저자는 관련 법률조항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침입 절도는 법적으로 인정되는 벽과 천장으로 구성된 공간에서만 성립 가능하다. 따라서 침입 절도는 건축의 구성 요건에 대한 가장 명백하고 일반적인 믿음인 건물의 안과 밖, 사유지와 공공지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그동안 많은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던 까닭에 이제는 진부해진 '도시'라는 주제를 신선하게, 그리고 '불법'적 측면에서 재조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 책을 평가한다.
 
저자는 현대 도시 공간이 감시와 통제가 용이하도록 당국의 필요에 맞춰 은밀하게 재설계되고 있음을 꼼꼼한 증거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도시의 특성과 범죄의 특수성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로스앤젤레스가 1990년대에 '은행 강도의 세계 수도'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도시 특성에서 기인한다. 광활하게 뻗은 수평면에 건설된 이 도시는 수많은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필히 운전을 해야 하는 이 자동차 도시에서, 은행털이범들은 마치 주유소를 들르듯 고속도로 출구나 입구에 위치한 은행을 털고, 다시 고속도로로 유유히 사라진다. LA경찰청 항공지원팀 역시 이러한 도시의 범죄 특성에서 생겨난 대표적 예다. 도주용 차량과의 자동차 추격전에 용이하도록 항공경찰과 감시용 드론이 도입됐고, 경찰의 추적에 대응하는 GPS 전파방해기가 등장했다.
 
저자는 책의 시작과 끝에 조지 레오니다스 레슬리를 호명한다. 그는 '이탈리안 잡' '오션스 시리즈' 등 도둑 영화의 최초 모델로서 19세기의 슈퍼 도둑이다. 18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은행털이의 80%가 그의 소행이라고 추측되고 있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연쇄 공간 범죄자'였다. 그는 화려한 언변과 카리스마로 뉴욕 사교계를 휘어잡으며 설계도를 확보했고, 완벽한 '도둑질'을 위해 실제와 똑같은 건물 모형으로 모든 동선과 시간을 계획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료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하고, 브루클린의 사이프러스 힐스 묘지에 찾는 이 없이 쓸쓸히 묻혀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무수한 사례들은 도둑과 도둑질이 모험담으로서 갖는 마력과 대중의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력을 회복해 준다. 저자에 따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다른 도둑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 깊숙한 곳에 숨겨진 공간적 가능성의 우주"를 보여준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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