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 마르떼 대표

어느덧 나이가 든 중년이 장례식을 마치고 한 할머니에게 유품을 받는다. 뚜껑을 열어보니 필름 뭉치가 있고 그것을 틀어본다. 영화 검열 때문에 잘라냈던 키스 장면 모음에서 흘러나오는 현악기의 애잔함.
 
광활한 침묵의 공간에 놓여 있는 우주선, 시간과 차원의 관계 속에 가족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가슴 먹먹히 반복되는 오스티나토.
 
상상 속의 공룡을 현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 느끼는 두근거림과 설렘을 나타내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  
 
영화 <시네마 천국>, <인터스텔라>, <쥬라기 공원>의 음악들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언정 이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좋은  음악들이다. 이렇게 영화 속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필름 스코어링(film scoring)이라고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존 윌리엄스(John Towner Williams), 한스짐머(Hans Zimmer), 대니 엘프만(Daniel Robert Elfman), 하워드 쇼어(Howard Leslie Shore) 등. 영화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흥분되는 대표적인 영화음악 작곡가다. 이들은 극도로 치달아 있는 긴장과 감동이 자아내는 메시지와 빛이 만들어 내는 영상 그 이상의 감동을 만들어 내는 예술을 통해 영화를 더 영화답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영화음악은 다른 음악장르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함께 부여된다는 점에서 감동이 일반적인 음악보다 더 쉽게 그 감정을 지배한다. 음악을 듣는데 영상은 좋은 길잡이 역할를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영화를 보지 않고 음악만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당시 감정의 상흔들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감동을 다시 끄집어 내어주는 역할, 더 나아가 감정의 왜곡이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다. 영화음악산업이 큰 성장을 구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개봉했던 영화 <라라 랜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콘텐츠에서 나온 영상과 음악을 통해 영상을 통한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수익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음악은 다시 영화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영화는 또다시 음악을 찾게하는 서로가 서로를 이어주는 보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영화음악 시장에서 예외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영화음악의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산업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영화음악을 위한 작업기간은 프리 프로덕션 작업에서부터 시작한다. 대본이 나오면 바로 음악작업을 시작할 수 있고, 촬영 때는 물론, 포스트 프로덕션 작업기간 또한 충분히 주어진다고 한다. 이는 영화음악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악작업이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영화도 있다고 한다. 
 
영화 개봉 전 이미 영화음반은 판매되며, 음악 마케팅부터 먼저 하는 제작사도 있다. 영화음악 악보 또한 출판되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영화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편곡악보들이 쏟아진다. 심지어 교육용 악보부터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다양하게 판매된다. 영화음악산업은 '음반-영화-출판'의 연결고리 속에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음악에 대한 제작사의 인식에 달린 부분이다. 촬영편집 후 일주일 만에 급하게 작곡해야하는 우리 환경과는 다소 다르다. 심지어 한국영화음악은 출판되는 악보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고 보면 될 정도다.
 
한국 영화음악과 외국 영화음악이 연주되는 횟수를 비교했을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외국 영화음악의 현주소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역사적으로 음악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음악이 목적인가 수단인가를 생각했을 때 얻어지는 결론은 누구나 같은 방향을 향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영화 음악산업은 분명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 발전보다 성장이 필요하다. 훗날 앞서 언급했던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반열에 한국 작곡가도 이름을 남길 날을 기대하면서 영화음악 산업의 토양과 구조가 조금씩 변화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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