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問診

송인필

가슴 속 촘촘히 박힌
그대 목숨소리 그대 체취 급하게 내려 놓고 까맣게 쫑대로 선 해바라기

하현달 깊이 기침으로 박힌다

고흐가 막도장을 찍는 밤


<작가 노트> 

“이 아득함 속에서 여름이 핀다”

도서관 사물함을 열면 오래 묵어 깊은 꽃향기가 난다. 책을 읽다가 목젖을 툭, 치는 글 갈피에 꽂아둔 꽃내음, 해바라기 꽃잎이 고흐의 그림 속으로 길을 연다. 촘촘히 박힌 슬픔을 가슴에 심고 고개를 떨군 해바라기처럼 오래된 책은 갈피마다 침묵의 뼈알들을 품고 있다.

사랑도 그렇다. 우리가 만나고 떠나보낸 시간의 무게는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겉표지에 앉은 우리는 기침을 쏟아내며 한결같다고 한다. 이 아득함 속에서 고흐의 해바라기가 피듯 여름이 피고 여름이 이운다. 고흐가 찍은 막도장같은 파도가 절박한 시간의 너울을 타고 기슭으로 길게 길을 튼다. 해바라기가 피는 계절이다.

 

·시문학 우수작품상으로 등단
 ·시집『비밀은 바닥에 있다』
 ·푸른시학상 수상
 ·부산작가회의회원
 ·김해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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