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한 지역화가와 시민들이 김형근 화백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산신문



현대미술의 교과서, 김형근 화백
“내 혈관속에 통영의 혼 흘러”
김형근 미술관 설립 평생의 꿈



"여러분들이 나보다 훨씬 많은 역량과 예술적 혼으로 우리 고향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서 힘써줬으면 좋겠다"
 
세계 미술계 반란자,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교과서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리(海里) 김형근(89) 화백 부부가 오랜 세월 쌓아온 예술의 혼과 함께 고향 통영을 방문,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큰딸 김양선 화가와 막내아들 김성주씨도 이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 화가는 '통영=김형근, 김형근=통영'이라며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통영의 혼을 3시간 가량 쏟아내며 눈물로 화답했다.
 
김형근 화백은 공간과 거리, 구도 등을 무시하고 특정한 장르나 양식을 탈피, 새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작가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 국전 대통령상 당선작 '과녁'으로 이름을 알린 김형근 화백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된 이 그림을 통해 혁신을 만들어냈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인 '과녁'은 현재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행되고 있는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에 전시, 그동안 일반 국민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던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김형근 화백과 함께한 '작가와의 대화'에는 작가와 작품에 관심이 있는 지역 화가들과 시민 30여 명이 참석해 진행됐다.
 
김형근 화백은 "남망갤러리에서 여러분들이 나를 맞이해주는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아내의 도움이 컸다. 고향 통영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작가와의 대화는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김형근 화백의 작품과 평소 그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나누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김형근 화백은 "내 몸의 혈관 속에는 통영의 혼이 있다. 내 말투에도 내 이름에도 모든 것이 다 통영이다. 나는 고향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었다"고 말하며 짧은 탄식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김 화백은 "나는 창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절제와 철저한 자기 책임, 온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형근의 예술, 그림 속에는 나의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나의 혼, 말투, 눈, 정신이 창작의 근원이며 이것이 곧 예술품이자 바로 나다. 나는 항상 고향을 생각한다”고 답했다.
 
1970년도 대통령상을 받은 과녁 작품에 대한 질문도 줄을 이었다.
 
김 화백은 "처음 과녁을 그렸을 때 남망산에 과녁이 있었다. 일장기와 비슷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은색을 섞었다. 과녁에는 총 3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화살은 같은 장소에서 쐈는데 화살이 꽂힌 모습은 다 다르다. 과녁도 화살도 영원하다. 과녁은 내 나라 정신이고 내 민족의 정신이다"고 설명했다.
 
은백색의 화가로도 불리는 김 화백은 죽음의 경험을 계기로 회화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던 경험담도 밝혔다.
 
1958년 까닭모를 고열로 앓아 눕게 된 김 화백은 병원으로 이송, 죽음의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의사의 강력한 주사에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하지만 사나운 폭풍이 지난 뒤 조용함과 평온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은백으로 가득한 그 미지의 나라는 언어와 문자만을 감지할 수 있는 황홀한 곳이었다고 그는 기억을 회생했다. 27시간 만에 다시 깨어난 김형근 화백은 이후 은백색을 무한히 펼쳐나가는 것을 작품에 반영했다.
 
또한 김 화백은 "내 살던 통영에 미술관을 세워 통영의 예술성을 펼쳐 보이고 싶고 통영의 명성에 걸맞게 세계적 명소를 만드는 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다. 내 예술 영감의 원천인 통영에 화답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남망산 얕은 언덕아래 목련꽃이 아름다운 김형근 예술가의 집에 그의 혼을 담은 미술관이 반드시 건립, 이 아름다운 간담회가 다시 열리는 것을 상상해 본다.  

한산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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