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어린 시선… 공감대 형성
영화·시집·소설 서평 실려 있어



황현산(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가 첫 산문집 <밤은 선생이다>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내놨다. 201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쓴 글을 모은 책은 암 투병 중에 펴내 더욱 의미깊다.

글 한 편 한 편엔 우리 사회에 대한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이 배어있다. 다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어 공감대는 더욱 커진다. 예컨대 '아 대한민국'과 '헬조선'을 보자.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아 대한민국'과 '헬조선' 사이에서 사라진 것은 토론과 그에 따른 희망이다. 지옥에 대한 자각만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다. '헬조선'은 적어도 '이 지옥이 자각된 곳'이라는 대목에선 오늘날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동시에 해법까지 품어내고 있다.

'함께 번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가 진정한 앎이며, 한쪽의 동포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진정한 국력'('전쟁을 안 할 수 있는 능력')이라거나 '쓰러지는 자가 누구를 용인하고 무엇을 관용하겠는가. 문제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안에서만 민주 발전의 결정적인 순간도 있고 핵심 단계도 있다'('문제는 또다시 민주주의다'), '우리는 이제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리본을 달건 촛불을 들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악마의 존재방식') 등에선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저자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정신과 육체의 식민화 시도도, 등단·비등단을 칼같이 가르는 등단 제도도 모두 남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열등감 문화의 소산'이라고 꼬집고('문단 내 성추행과 등단 비리'), 예술가의 처지에 대한 깊은 고뇌 속에서 당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며('예술가의 취업'), 문학사를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만연한 '여성혐오'를 비판('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하는 대목에서도 한참 시선이 머문다.

책 말미에는 영화 '곡성' 등에 대한 비평뿐 아니라 천양희 시인의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와 조선희 작가의 소설 <세 여자>, 김가경 작가의 소설집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등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책은 혼탁한 사회를 헤쳐나가는 나침반일 뿐 아니라 다양한 문학작품의 길잡이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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