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은 초가이다. 백성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볏짚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추수가 끝나면 볏짚으로 새 지붕을 이어 올렸다.
볏집을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지붕을 얹었다.
벼농사가 드문 강원도는 대신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송판이며 나무널판을 얹는 강원도의
너와지붕이 생겨났다. 제주도는 지붕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묶고 돌을 매달았다. 집을 어디에 짓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특성이 있다. 김해 장방리에는 갈대집이 있다.

▲ 김해시 장방리 갈대집 아래채. 비를 맞고 수십 년 세월을 보내는 동안 검게 변해가는 지붕과, 함석으로 마감한 용마루.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갈대로 지붕을 이었다니, 장방리 일대에는 갈대가 많겠구나 짐작하면서 취재길에 올랐다. 갈대집을 보기 전에 주변 환경을 먼저 둘러보았다. 장방리 갈대집 앞에는 철도가 달리고, 그 아래 화포천 습지가 있다. 화포천에는 갈대와 억새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물가에 자라는 억새라서 물억새라고도 부른다.
 
갈대와 억새는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줄기 끝의 꽃모양이 다르다. 식물학 용어는 어렵지만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와 있는 네티즌들의 구분 방법은 재미있다. 어떤 이는 '억새는 곱게 빗은 긴 백발, 갈대는 그보다 자유로운 모양'이라고 말한다. 억새는 산방꽃차례, 갈대는 원추꽃차례로 꽃이 달린다는 정보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들판에서 자라는 억새도 있고,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도 있지만, 산에서 자라는 갈대는 없다. 순천은 갈대이고, 화왕산 억새이다.
 
화포천의 갈대와 물억새는 따로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뒤섞여 자라기도 한다. 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는 모습이 시선을 붙잡는다. 변하기 쉬운 여자의 마음을 갈대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아름답게 흔들리는 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잠자리 한 마리가 갈대 줄기에 앉았다가 억새 줄기로 옮겨간다. 발밑에는 메뚜기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폴짝폴짝 뛰어간다. 화포천 습지의 물 밑에서 뭔가 찰박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대로,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가만히 놓아두면 좋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산책길을 함께 걷는다는 의미에서 목재 데크 '대통령의 길'이 만들어진 거기까지, 그리고 더 이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그 무엇도 보태지 말아야겠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래서 인간 노무현의 마음과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포천이다.
 
철길 아래 난 터널을 지나 갈대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한림면 장방리 279-1번지' 주소를 가진 갈대집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1호로 지정되었다.
 
갈대집의 건축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지역에는 임진왜란 이후 낙동강 지류로 피난 온 사람들이 갈대로 지붕을 이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장방리에는 갈대집들이 마을을 이룰 정도로 흔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집 외에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안채, 사랑채, 아래채로 구성된 장방리 갈대집 3동은 산언덕에 위치했다. 화포천에 홍수가 질 때의 안전을 고려한 입지이다. 길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이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간 걸 볼 수 있다.
 

"갈대집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억새집이에요." 갈대집에 거처하는 영강사 청호스님(60)의 말을 들으니, 비로소 의문이 풀린다. 사실, 화포천에는 갈대보다 억새가 훨씬 많아 보였다. 문화재지정자료로 정하면서 갈대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주재료가 억새이긴 하지만 억새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이상했는지도 모르죠. 갈대집이 듣기 좋잖아요"라는 스님의 말도 그럴듯하다.
 
외지인들은 갈대집이라고 철썩같이 믿을지 모르지만, 억새와 갈대의 대가 함께 사용되었을거라는 걸 아는 사람도 있다. 취재 중 우연히 만난 김해의 환경모임 '자연과 사람들'의 생태체험지도사 남귀연 씨도 "갈대와 억새를 함께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청호스님이 그것을 확인해주었다. "갈대, 억새의 대를 엮는데 억새가 훨씬 더 많아요. 한번 지붕을 올리면 최하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버팁니다. 사는 동안 지붕을 한 번 올리는 셈이지요. 비를 맞으면 저렇게 색이 검게 변하지만, 안에는 원래 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청호스님은 6대째 이 집에 살고 있다. 8남매가 이 집에서 자랐고, 청호스님은 출가 후 집 위에 영강사라는 법당을 짓고 현재까지 집을 돌보고 있다. 한 세대에 평균 30년을 잡고 보면 이 곳에서 조상대대로 180년이 넘도록 산 셈이다.
 

▲ 안채인 '영강정'(위)과, 안채와 기역자 배치를 한 사랑채(아래). 사랑채의 지붕 밑을 올려다보면 5년 전 복원 때 새로 이어 올린 갈색 부분이 보인다.
'영강정(永江亭)이라는 이름을 가진 안채는 남향이다. 서쪽을 보고 앉는 사랑채와 기역자 배치를 하고 있다. 아래채는 사랑채와 니은자 배치를 하며 남쪽을 바라본다. 3동의 집은 방 2칸, 마루 1칸으로 된 초가삼간의 원초적인 오막살이집이다. 방에는 벽장도 있어 소박하고 알뜰한 살림살이였을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안채와 사랑채가 공유하는 마당에 가을 햇살이 곱게 내려앉았다. 아래채 마루에서 내딛는 또 하나의 마당은 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지붕은 50㎝에 가까운 두께로 억새와 갈대의 대를 쌓아 이었고, 용마루는 비를 막기 위해 함석으로 마감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후 지붕을 한번 복원했다. 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붕 한 채를 다 이을 정도로 억새와 갈대의 대를 베어낼 예산이 모자랐다. 사람이 일일이 베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절반은 새로, 그 위에는 옛 지붕을 덮었다. 그래서 지붕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로 이은 부분은 갈색이고, 옛 지붕은 짙은 회색이다.
 
화포천을 방문해 '대통령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고, 김해의 생태환경모임에서 화포천을 방문하는 행사도 많다. 그 길에 화포천의 억새와 갈대로 지은 지붕을 인 장방리 갈대집도 들러보길 바란다.
 
장방리 갈대집은 한림 지역의 전통적인 건축재료로 지어진 집이라서 건축학과 민속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런 건 학자들 몫이겠지만, 화포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특이한 감흥을 준다.
 
지금은 철도 때문에 화포천이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마을에서는 화포천이 내려다 보였단다. 아침 햇살에 반짝일 때는 은갈대, 꽃이 떨어진 갈대가 낮에 잿빛으로 흔들리면 재갈대, 노을빛이 물들면 금갈대라고 불렸던 갈대도 훤히 보였겠다. 억새의 은빛 손짓에 허리 펴면서 어머니는 밥 먹으러 오라고 아이들을 불렀을 것이다.

억새는 고운 백발 머리, 갈대는 빗지 않은 모양
갈대와 억새는 둘 다 벼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갈대는 습지나 갯가, 호수 주변 모래땅에서 서식한다. 높이 3m정도까지 자란다. 꽃은 8~9월에 피고, 수많은 작은 꽃이삭이 줄기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리며, 처음에는 자주색이나 담백색으로 변한다. 어린 순은 식용으로 사용하며, 한방에서는 봄에서 가을 사이에 채취하여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햇볕에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한다. 이삭으로는 빗자루를 만들었고 이삭의 털은 솜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성숙한 줄기는 갈대발·갈삿갓·삿자리 등을 엮는 데 쓰이고, 또 펄프 원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억새는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1∼2m로 갈대보다는 키가 작다. 꽃은 9월에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차례로 달리며 작은 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뿌리는 약으로 쓰고 줄기와 잎은 가축사료나 지붕 잇는 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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