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무에 휩싸인 부엉이바위. 그 뒤로 능선 두어 개가 수묵담채기법의 배경으로 서 있다. 부엉이바위에선 조용히 비를 맞고 있는 봉하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비와 함께 가을도 점점 깊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계절의 오고감이 산을 타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하루가 다르게 계절의 옷을 바꿔 입는 산들이다. 이번 산행은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위치한 봉화산(140m)을 오른다. 일명 '대통령의 산'이라 불리는 곳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 옆 봉화산 산행안내도 입구를 들머리로 잡고 석굴, 오솔길, 정상, 사자바위, 정토원, 부엉이 바위,
마애불로 해서 들머리로 다시 내려오는 봉화산 일주 코스다. 산행 이정표에 '대통령의 길'이라 명명되어진 코스다.


들머리에 서자 부엉이 바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떡 버티고 섰다. 단감나무가 제 잎 다 떨어뜨리고 오로지 까치밥 두엇 남겨두고 있다. 그 나무 밑으로 하얀 구절초가 비를 맞으며 흐드러지고, 김해의 차나무인 장군차 군락도 열 맞추어 가지런하다.
 
잘 다듬어진 나무계단이 비가 오는 오름길을 편하게 해준다. 숲으로 들자 곧 큰 바위벽에 부딪힌다. 이곳에는 바위 사이로 석굴이 있는 곳이다. 바위 왼편으로 제법 널찍한 터가 나온다. 일설에 자은암(子恩庵)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 봉화산 정상에 있는 '호미든 관음상'. 오른손에는 호미를, 왼손에는 호리병을 들고 있다.
허리를 숙여 석굴로 들어가 본다. 굴은 들어갈수록 좁아지는데, 꽤 길고 깊다. 그 끝에는 좀 넓은 공간이 나오고 촛불이 어렴풋하게 펄럭인다. 그 촛불에 기대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 갑작스러움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난다. 가만 보니 비구니 스님 같다. 방해될까 저어하는 마음에 급히 몸을 돌려 나온다.
 
석굴 옆 바위벽에 있는 작은 제단을 본다. 촛불 켠 흔적도 있다. 그 바위벽을 타고 찔레덩굴이 하염없이 아래로 길을 내며 제 몸을 늘어뜨린다. 물끄러미 그 바위벽을 응시하는데 물소리가 크다. 비가 꽤 내리는 통에 바위를 타고 빗물이 물길을 잡았다. 수량이 많아서 작은 폭포를 이루며 바위 밑으로 떨어진다. 쏟아지는 물소리도 제법이다.
 
석굴바위에서 나와 사자바위 가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비 오는 오솔길의 한적함은 사람 마음마저 다 적셔놓는다. 점점 안개가 짙어지자 소나무 숲이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그 사이로 각자 살아온 길 따라 제각각으로 굽어지고 휘어진 나무들이, 그들의 적요한 생애를 안개처럼 풀어낸다.
 
▲ 자은암 터와 석굴.

그들의 구성진 이야기를 듣다가 발치 아래를 보니, 두꺼비가 풀뿌리를 쥐고 길을 오른다. 저 나름대로 악전고투 중이다. 두꺼비는 성취하려는 자의 상징이다. 그래서 예부터 두꺼비는 장수, 재복, 남성상을 의미한다. 그런 두꺼비 출현이 반갑기만 하다.
 
산이 야트막해도 우중유산(雨中遊山)의 묘미는 촘촘하다. 비가 와서 그렇겠지만 산에 인적도 없고, 여타 기계적인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나뭇가지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와 넓은 활엽수 잎에 듣는 빗물소리만 크게 들릴 뿐, 오솔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도 길동무가 된다.
 
점점 깊어지던 골은 슬쩍 안개 뒤로 몸을 숨긴다. 더욱 자욱해지는 안개. 길을 감췄다가 내줬다가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길이 열렸다가 닫히고, 닫혔다가 열린다. 때문에 안개는 비밀스러우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로움이 있다. 가림으로써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림은 곧 절정의 새로움을 준비한다는 뜻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자바위 옆길로 오르다 보니 맥문동 밭이 펼쳐지고, 소나무 둥치에는 운지버섯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고사리도 연초록빛 싱싱한 이파리를 주먹 펴듯 펴고 비를 맞고 있다. 곧이어 안부. 봉화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호미든 관음상'이 안개에 싸여 그윽하다.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여느 산의 정상 오르는 길과 사뭇 다르다. 비와 안개 때문에 호젓한 산행을 만끽하고 있지만, 대신에 정상부에서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은 기대할 수 없겠다. 세상사 일이 모두 좋을 수만은 없을 터, 이 아담한 산에서도 진부한 진리에 새삼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가끔은 안 보이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이다. 미련이란 지푸라기도 그래서 놓아버려야 할 일이다.
 
돌계단을 한 계단씩 오른다. 낮은 관목들이 허리를 숙인 채 비를 맞고 있다. 졸참나무, 싸리나무, 철쭉 등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드디어 정상. 사방으로 전망을 볼 수 있도록 4개의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세상은 안개에 가려 사라진 지 오래다.
 
각각의 전망대에 선다. 마음의 눈으로 산 아래를 바라본다.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는 풍경들.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봉하벌도 보이고, 실오라기 같은 화포천이 들판 사이로 흐르며, 멀리 두 팔 벌린 신어산도 보인다. 낙동강도 여유로운 발길로 윤슬을 반짝이며 손을 흔든다.
 
정상에 서 있는 호미든 관음상 앞에 선다. 오른손에는 호미를, 왼손에는 보리수 호리병을 들고 서 있다. 비를 맞으며 서 있음에도 관음상의 온화한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 사자바위 봉화대.

정상의 관음상을 뒤로하고 사자바위로 내려가는 길. 싸릿대 숲에 빗방울이 들자 '우수수, 우수수~'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그 소란도 즐거운 산행의 동행이 되어 길을 따른다. 나무계단 입구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금강송 한 그루가 사자바위를 지키고 있다. 그 탄탄함과 푸름이 마치 금강역사가 떡 버티고 서 있는 것 같다. 계단에는 낙엽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상수리 열매 몇 개 굴러다닌다.
 
곧이어 사자바위. 이곳은 원래 봉화를 올리던 봉화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봉화대를 쌓았던 돌무더기만 동그랗게 있어서 그 흔적만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뿐이다. 봉화대 앞에는 제단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보인다. 일설에는 민간신앙의 제단이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그 바위에서 보니 봉하벌이 어슴푸레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사저와 묘역도 희미하게 보였다 사라진다.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절벽이 '천 길 낭떠러지'다.
 
다시 하산 길. 정토원 부근에 스러져 가는 석상이 하나 보인다. 누구의 것인지 기단의 명판이 지워져 버려 알 수가 없다. 군데군데 깨지고 흩어져 을씨년스럽다. 퇴락의 흔적이 역력하다. 관심에서 멀어져 버린 자의 처량함이 나그네의 가슴을 심란하게 적신다.
 
▲ 정토원 수광전.

비를 오래 맞으며 걸으니 한기가 살짝 든다. 정토원 휴게실에서 쑥차 한 잔 얻어 마신다. 따뜻하니 좋다. 잠시 쉬다 정토원의 대웅전 격인 수광전(壽光殿)을 기웃거려 본다. 아미타 부처를 모셨기에 그렇게 붙인 것 같다. 아미타불 오른편으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보인다. 그저 웃고만 있는 얼굴이다. 편해 보인다.
 
정토원에서 부엉이바위로 가는 길. 잠시 후 전망바위에서 안개 사이로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바위 주위로 만산홍엽, 울긋불긋 단풍이 그득하다. 가을정취가 가을비와 함께 촉촉하다. 부엉이바위 뒤로는 능선 두어 개가 수묵담채기법의 배경으로 서 있다. 멀리 경전선 열차가 전라도 쪽으로 바삐 달려가고 있다.
 
부엉이바위. 절벽 쪽으로는 울타리를 치고 자물쇠를 채워 접근을 막았다. 그 울타리를 보니 새삼 한 대통령의 절명이 눈에 선하게 밟힌다. 사방의 풍광은 훤하게 트여 시원스럽다. 봉하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은 조용히 비를 맞고 있고, 사람의 인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하산 길. 바위와 바위 사이로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내려가자니 둥그런 바위 하나. 둘로 갈라져 있다. 마치 큰 알이 갈라져 탄생의 순간을 맞는 것 같다. 누군가 법장을 두드려 신화의 알이 부화하는 순간이다. 기세 좋게 옻나무 한 그루, 홀로이 핏빛 단풍들어 선명하게 빨갛다.
 
마애불 입구. 너럭바위가 길게 뻗었다. 그 돌 사이로 구멍을 내고 감실을 만들었다. 마애불 앞에서 발원의 힘을 더하기 위해서이리라. 이렇듯 사람들의 염원은 바위보다 더 견고하고 무겁기만 하다.
 
▲ 부엉이바위에서 하산길에 만난 갈라진 바위.

마애불이 비를 맞고 누워 있다. 비에 옷자락까지 자세하게 음영이 드러난다. 마치 바람에 휘날리듯 부드러운 곡선이 살아난다. 통통한 얼굴에는 존엄의 그윽함이 묻어 있다. 이끼가 비를 머금어 더욱 푸르게 피어오르고, 주위 참나무들은 단풍들고 제 잎 떨어뜨려 세월의 무상함마저 들게 한다. 마애불에 두 손 합장하고 길을 나선다.
 
터덜터덜 빗물을 털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산행 끝머리다. 뒤로 돌아 부엉이바위를 쳐다본다. 부엉이가 많이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참 단단하게 생겼다. 그리고 보니 봉화산은 사자가 웅크리고 포효하는 형상의 산이다. 전체적으로는 아담하게 생긴 전형적인 마을 뒷산인데,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유장한 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작은 오솔길 사이로 편하게 걷다보면 갑자기 기암괴석이 앞을 가로막고, 완만한 능선으로 길안내를 하다가도 성난 파도처럼 급전직하 절벽을 보여주기도 하는 산. 그래서 봉화산은 작지만 단단한 산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산. 어느 대통령의 일생을 참으로 많이 닮은 산….


Tip. 봉화산 마애불 - 좌불로 조각되었다가 누운 채 발견

봉화산 중턱 부엉이바위 쪽으로 오르다 보면, 거대한 암벽 사이로 오랜 세월의 풍상을 꿋꿋하게 견디고 있는 마애불이 있다. 바위암벽들 틈에 끼여 와불(臥佛)처럼 드러누운 형태다. 원래는 암벽에 앉아 있는 좌불(坐佛)로 조각되었는데, 발견 당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암벽에서 떨어져 나와 누운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0호로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2.48m, 무릎높이 1.7m로 보존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광배는 없으나 균형 잡힌 콧등과 조그마한 입, 어깨까지 늘어진 커다란 귀 등이 세련된 조형미를 보이고 있다. 눈은 지그시 감았는데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하고, 전체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깊은 선의 경지에 몰입해 있는 듯하다.
 
손모양은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 어깨 높이에서 손가락을 위로 향하게 했고, 왼손은 허리춤에서 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펴고 있다.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풀어주고,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 황후가 꿈에 한 청년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하자 어느 신승이 불법의 힘으로 그 청년을 바위틈에 가둬 가락국의 땅 봉화산의 석불로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마애불을 김해시청 홈페이지에는 앉아 있는 것처럼 사진을 세워 놓았는데, 왼쪽으로 드러누운 채로 보존되고 있으니 착오 없기를.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사진=최산 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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