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제조업이 기로에 섰다. 김해는 조선과 자동차 호황기엔 공장만 세우면 돈을 버는 기회의 땅이었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한계기업이 증가하면서 이젠 미래를 걱정하는 도시가 됐다. 하지만 김해의 위기는 그동안의 관성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 고도화와 창업 생태계 육성에 적극 나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외 선진도시를 찾아 김해 제조업의 활로를 모색하는 기획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 김해가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상동면 매리의 산골짜기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크고 작은 공장들의 모습. 김해뉴스DB



한일합섬 설립 후 50년간 기업 급증
금속가공 등 전통산업 한계 봉착 
의생명 등 전략산업 육성 성과 미흡
'선택과 집중' 새 틀 안짜면 미래 없어 



1960년대 김해시 안동공단 한일합섬에서 태동한 김해 제조업은 양과 질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980·90년대 섬유, 신발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규모를 키운 김해 제조업은 2000년대 중반 성장을 가속화한다. 조선·플랜트 호황과 자동차 수출 확대로 울산, 거제, 창원 등에서 부품·소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부산 사상공단의 기업들도 김해로 대거 이전해 왔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수가 급증하면서 개별기업들은 공단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농공단지가 들어섰고 2000년대 중반에는 그보다 규모가 큰 일반산업단지도 대거 자리를 잡는다.
 

▲ 김해의생명센터에 개소 예정인 하버드대 고든의료영상센터 김해연구소.


■수명 다해가는 지역 제조업 
이러한 성장의 결과, 현재 김해시 주력산업은 기계금속·자동차·선박 업종으로 업체수 기준으로 전체 60.6%를 차지하게 됐다. 10인 이상 사업체의 출하액도 19조 2507억 원(2015년 기준)에 이른다.
 
특히 동남권의 제조업 호황 당시 크고 작은 공장이 나대지는 물론 산골짜기까지 우후죽순 들어섰다. 그 결과 10인 이내 영세사업장이 전체 기업의 70% 이상을 차지했고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한 '임금 따먹기' 식 산업구조가 고착화됐다.
 
조선·기계·자동차 산업의 불황 속에서 금속가공업, 사출, 단순조립 등 전통적인 제조업 구조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다. 싼 땅을 찾아 난개발로 성장한 지역제조업은 더 이상 비교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채 폐업 도미노를 맞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박정근 경남동부지부장은 "김해 제조업체 대부분이 대기업에 수직적 하청구조로 납품하는 3~4차 협력사이기 때문에 자생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부산·창원·거제·양산과 함께 동남권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김해 제조업이 생존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해시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지역산업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의생명산업을 육성하고, 최근엔 스마트 부품 클러스터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김해시가 차세대 먹거리 마련을 위해 설립한 김해의생명센터가 문을 연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김해는 동남권에서 의생명기업 집적화 1위(기업체수 100여 개)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암 표적물질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하버드 의과대학 고든의료영상센터 김해연구소를 유치하는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 로봇업체들이 지역에 일부 포진해 있는 것도 희망적인 부분이다. 골든루트산단에 본사를 둔 '스맥'이 대표적이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스맥은 공작기계, 산업용로봇, 첨단정보통신기기 제조 등의 사업분야를 영위하고 있다. 스맥의 2016년 매출은 1224억 원에 이르고 최근엔 스마트 공장에 토대가 되는 FA(공장자동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 김해 골든루트 산단에 본사를 두고 공장자동화 시스템을 생산하는 '스맥'의 생산라인. 사진제공=스맥


■녹록지 않은 김해 제조업의 미래  
하지만 이들 분야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극히 낮은 수준에다 산업구조 재편을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김해는 전국 4대 의생명도시인 강원도 원주, 충북 오송, 대구시 가운데 여전히 후발주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생명센터를 통해 스타트업(신생벤처 기업)을 지속적으로 키워내고 있지만 특화산단이 없어 성장한 의료기업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김해의생명센터 차병렬 연구기획팀장은 "그동안 김해의 의생명 기업들은 양적·질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규모를 키운 기업들이 입주할 특화산단이 없다"며 "강원도 원주처럼 의생명 기업을 위한 전용공단이 조성된다면 지역에서 성장한 스타트업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의료업체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지역산업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산업의 미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김해는 서울·경기 뿐 아니라 다른 대도시에 비해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인 IT·전자 분야의 뿌리가 허약하고,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인프라 또한 충분하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전략적인 접근이 없다면 시와 지원기관의 4차 산업 육성정책은 구호에 그칠 공산도 높다. 특히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지역 산업이 새 틀을 짤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이 김해시와 각급 지원기관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정근 지부장은 "단순 지원에서 벗어나 한정된 자원이 제대로 쓰일 수 있게 지원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우선 기술력이나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을 선별해 신성장 유망업종으로 육성하는 중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
 



■ 경쟁력 상실하는 기업도시 김해

7539개 업체 있지만 선도기업 없어 
 

▲ 임대공장 매물을 알리는 벽보가 나붙어 있다.


최근 지역업체 부도·폐업도 잇따라 

"지역산업 견인하는 선도기업을 찾기 힘들다"  
 
김해에 본사를 둔 신발 제조기업인 태광실업은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인 1조 6544억 원을 기록했지만 지역 경제와 협력업체에 미친 효과는 매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베트남 현지공장에서 대부분 생산활동이 이루어져 그만큼 파급효과가 상쇄됐기 때문이다. 
 
한때 4000억 원 이상 매출을 기록하면서 지역 조선기자재 업체의 선두주자였던 하이에어코리아는 2016년 3034억 원 매출을 보이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 지역 내 생산을 포기하거나 경기 여파로 고전하면서 산업경쟁력도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김해의 7539개 업체 가운데 71.6%가 종업원 10인 이내 영세중소 기업이다 보니 생산성은 낮은 상황이다. 2014년도 경상남도 기본통계에 따르면 김해의 10인 이상 제조업체 수는 2318개로 창원(1945개)보다 많아 경남 최대를 기록했지만 김해 기업들의 총출하액은 19조 2128억 원으로 창원(57조 4625억 원)을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창원, 진주, 거제 등에 비해 직접 수출을 하는 기업체 수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김해지역 788개 업체가 2512백만 달러(2017년 11월 기준)를 수출했는데 경남 수출에 4.5%를 차지하는 데 그친 수치다.  
 
여기다 부도율 등 김해지역 제조업의 각종 거시지표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시군별 어음교환 및 부도 현황'에 따르면 2014년 0.25%, 2015년 0.27%에 불과하던 김해 지역업체의 어음부도율이 2016년 0.7%로 급등했다. 어음부도율은 지난해 4, 5월 각각 2.31%, 0.85%를 기록하는 등 크게 오르다 7월 이후 0.5% 전후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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