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 비디오 시기별 특징 고찰  
'젖소부인' 흥행 전성시대 열어
 본질 '판타지 구현'인 대중문화물



대중문화 콘텐츠 중에는 전문가에게 혹평에 가까운 냉대를 받으면서도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장르가 많다. 섹스와 폭력물 등 이른바 B급 장르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한국형 B급 장르이자 성인물인 에로 비디오의 시기별 특징과 사회적 맥락을 고찰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거의 소멸한 것처럼 보였던 에로물은 최근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진단한다.
 
에로 비디오는 좁은 의미에서는 1980년대 말에 등장해 2000년대에 사실상 소멸하기까지 한정된 기간동안 비디오테이프 형태로 유통된 성인용 비디오물을 가리킨다. 1990년대 한시네마타운과 유호프로덕션이 업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가운데 한시네마타운이 1995년 제작한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에로 비디오 전성시대가 열렸다. IMF 구제 금융 이후에도 꾸준한 호황을 누렸으나 인터넷과 모바일의 확산으로 불법 다운로드가 공공연히 이뤄지면서 에로 비디오는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에로 비디오는 계속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에로물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살아남았다"고 평가하면서, 에로물이 이처럼 변화해 가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면서 진화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미디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에로물이 유통되는 주 플랫폼이 영화에서 비디오로, 다시 IPTV로, 이제는 VR(가상 현실)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변천의 역사를 에로 비디오와 영화 작품들의 분석을 통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에로물의 미디어 플랫폼은 변해 왔지만 에로물의 기본적인 내용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남성의 관음증과 금지된 경험 제공이 에로물의 주 내용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원초적이고 저급한 욕망 충족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에로물은 미디어 기술 진화에 적응해 가면서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에로 비디오라는 장르의 등장, 성장, 쇠퇴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추적한다. 하지만 단순한 나열식 전개가 아니라 시기별 특징과 그러한 양상을 낳게 한 당시의 사회구조적 맥락과 시대적 배경을 살핀다. 거기에 더해 기술 플랫폼과 산업 구조와의 연관 속에서 변천사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에로 비디오의 사회사'란 제목이 붙을 만하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에로물들은 시기와 관계없이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에로물은 대중의 욕망과 이에 따른 수요를 기반으로 번창해 왔다. 특히 에로물은 남성의 욕망을 대상으로 하는 오락물로서 철저하게 남성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시선의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오로지 시선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남성의 판타지 구현을 본질로 하는 대중문화물이 바로 에로 비디오인 것이다.
 
둘째, 유교적 보수주의가 아직 남아 있는 한국에서 에로물은 엄격한 잣대의 합법적 심의를 거친 성인물이기 때문에 불법 포르노에 비해 노출 수위가 낮다. 셋째, 에로물은 저급한 욕망에 영합하는 B급 문화 장르로 손가락질당하면서도 대중문화 산업의 중요한 영역으로 지속됐다. 에로물의 주 활동 공간이 비디오 시장에서 인터넷과 IPTV로 옮아간 후에도 에로물이나 포르노는 영화 산업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효자 종목이다. 2013년 골든타이드픽처스가 제작해 IPTV, 케이블 VOD, 웹 다운로드 등으로 유통시킨 '젊은 엄마' 1, 2편은 제작비 대비 큰 수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에로 비디오 장르는 한국만의 특수한 환경에서 성 장면을 주 볼거리로 하면서도 늘 장편 내러티브를 빼놓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시류에 편승해 당시 유행하는 스릴러나 공포물 요소를 에로물과 결합한다든지, 일본 핑크 포르노의 구조를 차용하는 등의 시도를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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