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용문학관 전시실 내부 포토존.

 

실개천 흐르는 마을에 자리한 문학관
황토담에 우물·장독대 정겨운 고향집

좌우 이념대립으로 불우했던 생애
6·25 때 납북, 37년간 이름없던 문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참신한 시어(詩語)와 절제된 이미지로 우리나라 현대시를 한 차원 성숙시킨 시인 정지용을 소개하는 문학관은 충북 옥천군에 복원한 시인의 생가와 함께 있었다. 시인이 꿈에도 잊을 수 없다고 노래했던 '고향 마을'에 우뚝 선 정지용문학관. 황토담 사이로 열린 사립문 안쪽으로 보이는 장독대와 우물이 정겹다.
 

▲ 정지용 생가 앞에 마련된 물레방아(왼쪽)와 시인이 태어나서 신혼 살림을 차렸던 방.


"할아버지가/ 담배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고향집을 그리워했던 시인의 정서도 바로 이런 풍경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시골집으로 꾸며진 생가 뒤편에 마련된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면, 한복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시인의 동상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는 벤치가 있다. 시인과 함께 기념 촬영할 수 있도록 마련한 포토존이라고 했다. 전시실로 들어가면 첫머리에 걸려 있는 작품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눈 감을 수밖에…."
 
가슴이 따뜻한 시인의 노랫말. 바로 그런 정서 덕분에 시인을 닮고 싶어 하는 문학소년·소녀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전시실 중간에는 시인이 살다간 발자취를 보여주는 연보가 적혀있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2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낸 시인 정지용.
 
"사춘기에 연애 대신 시를 썼다. 그것이 시집이 되어 잘 팔렸을 뿐이다. 사춘기를 지나서는 일본놈이 무서워서 산으로 바다로 회피하면서 시를 썼다"고 고백한 산문에선 솔직·담백한 인간미가 드러난다.
 

▲ 정지용문학관 앞마당. 시인의 동상 뒷편으로 깨끗하게 꾸민 정원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전시실 내부. 각종 영상 자료가 컴퓨터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 정지용이 마흔세 살에 맞이한 8·15 광복에 이은 6·25 전쟁 중에 실종되면서 무려 40여 년간 잊혀진 시인이 되었다. 6·25전쟁이 터지고 채 한 달도 안 된 1950년 7월,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한 시인이 서울 녹번리 자택으로 찾아온 젊은 문인 4명과 집을 떠난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이후 월북자로 분류된 시인의 이름이 1988년 민주화 조치로 해금될 때까지 무려 37년간 사라져 버렸던 사연이 이어진다. 하지만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 살던 시인의 아들이 "남쪽에 살고 있을 아버지 정지용을 만나고 싶다"는 신청서를 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남과 북 양측에서 버림받은 존재로 확인된 시인 정지용. 최근에는 1950년 9월 북으로 끌려가던 시인이 경기도 동두천 인근에서 미군 폭격을 맞아 사망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고 했다.
 
"별똥별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가/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다오…."
 
정확한 진실은 알 길이 없지만 이처럼 섬세한 감성을 노래했던 사정시인 정지용이 어떻게 문학을 계급투쟁의 도구로 바라보는 좌파 문인이 될 수 있었을까. 8·15 광복 이후 이땅에 몰아쳤다는 좌우이념대립 구도에서 희생된, 불우했던 시인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토록 불행했던 종말을 시인 정지용 본인은 미리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실종되기 직전인 1950년 6월에 마지막으로 쓴 작품, '나비'가 눈길을 끈다.
 
"내가 인제/ 나비같이/ 죽겠기로/ 나비 같이 날아왔다.// 검정비단/ 네 옷 가에 앉았다가/ 창 훤하니/ 날아간다…."
 
김해뉴스 /옥천=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
△ 부산·대구고속도로(91㎞)를 타고 가다 경부고속도(141m)로 갈아타면 된다. 약 2시간 30분 소요.

*관람 시간
① 오전 9시~오후 6시.
② 매주 월요일과 매년 1월 1일, 추석, 설날은 휴관. 043-730-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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