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잘린 얼굴·파이프 문 모습 등
거장들이 자화상 그린 이유 집중
오늘날 '셀피'로 이어지고 있어



자화상(自畵像)은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다.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라는 말이 있듯 중세 이후 수많은 화가가 자화상을 남겼다. '불운한 천재'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유달리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귀가 잘린 얼굴에서부터 여러 종류의 모자를 쓴 모습, 파이프를 입에 물거나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고 작업 중인 장면까지 다양한 종류의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은 시인들에게도 창작의 주요 모티프였다. 서정주는 23세에 쓴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란 구절로 유명한 윤동주 시의 제목도 '자화상'이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사가인 제임스 홀은 이 책에서 "자화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른바 '자기 고백의 시대'를 정의하는 시각 장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중세 이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온 문화적 현상이 오늘날 '셀피(Selfie)'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셀피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찍는 사진'이란 뜻. 2013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사전>을 출간하는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사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이기도 하다.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자신의 모습을 찍는 것이 일상화된 세태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얼굴은 예술이 된다'는 과거의 자화상 명작들을 선보이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작업의 결과물보다는 '왜 예술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화폭 위에 재현했는가'를 따지는 데 집중한다. 각 시대의 사회·문화·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예술가들의 '자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나를 조명한다. 책은 중세에서 출발해 현대 작가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자기 재현적 이미지들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자화상이라는 장르의 지도를 그린다. 연대기에 따라 10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해 예술가들이 살던 시대에 통용됐던 사상과 생각을 파고든다.
 
3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플로티노스는 자화상에 대한 철학적 언명을 남겼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점심밥을 훔쳐 가는 쥐를 향해 스펀지를 던지는 자신을 재미있게 그린 12세기 보헤미아 화가 힐데베르투스나 예수의 옆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겸손한 자신을 표현한 던스턴 성인(聖人·909~998)의 모습도 이해가 갈 법하다.
 
책은 외형을 닮게 그리는 것만이 자화상의 목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고된 작업을 불평하면서 한껏 몸을 뒤틀며 작업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캐리커처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폭력적인 삶을 살았던 카라바조(1573~1610)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라는 작품에서 속죄하는 의미로 다윗에게 목이 잘린 골리앗에 자신을 투영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려는 목적의 자화상과는 반대로 자신의 아픔이나 후회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자화상도 있었던 것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예술가들의 자기 인식이나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도 흥미롭다. 15세기까지는 화가들이 자화상에 자신을 드러내더라도 주변 인물로 등장하거나 조그맣게 표현되고 심지어 다른 인물로 위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15세기 말부터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업적을 자랑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자신의 모습을 성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림 안에 자신의 이름과 제작 연도를 남김으로써 당시 예술가의 높아진 지위를 증명했다.
 
예술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들이 그린 자화상은 인기 수집품이 됐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주문자의 취향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고뇌하는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표정의 자화상이나 인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도 등장했다.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화가의 작업실'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가로 6m, 세로 3.6m의 그림은 가운데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양옆으로 약 서른 명의 인물들을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그려 넣은 대작. 그중에는 당시 실제 정치인들도 다수 존재하는데 모두 유령 같은 모습으로 묘사될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에만 집중하고 있는 쿠르베 자신이다.
 
여성 화가가 자신의 자존감을 화면을 통해 과시한 사례도 눈길을 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소포니스바 안귀솔라는 '소포니스바 안귀솔라를 그리고 있는 베르나르디노 캄피'라는 그림에서 스승인 캄피보다 자신을 훨씬 크게 표현해 주목을 끈다.
 
자화상은 현대에 들어 더욱더 번성하고 있다. 저자는 '셀피의 일상화'에서 보이듯 국적이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자화상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내는 상황을 주목한다. 그는 "자화상은 그 안에 담긴 인물의 영혼에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열쇠"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현대 도시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익명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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