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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의 기원시론
  • 수정 2018.08.22 09:25
  • 게재 2018.08.22 09:23
  • 호수 386
  • 19면
  • 김용권 시인(report@gimhaenews.co.kr)
▲ 김용권 시인

더워도 너무 덥다. 도시가 열섬이다. 입추, 말복을 넘겼지만 더위의 기세는 맹렬하다. 독한 술의 도수도 아니면서 40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연일 방송에서는 사상초유의 온도를 갱신한다면서 열을 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기조차 꺼린다. 그러다 보니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홈캉스족, 가까운 호텔에서 즐기는 호캉스족 등, 새로운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요즈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보다는 호젓하게 즐기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리라.
 
8월의 여름은 수많은 울음을 남기고 있다. 울음이란 우리가 태어날 때 처음 일성을 울리던 소리였다. 태초 적부터 소통의 언어가 없을 때 제일 먼저 생겨난 소리도 이 울음인 것이다. 이것은 서로간의 소통을 원하는 소리요, 음악적 요소를 지닌 리듬의 첫 음절로 어떤 말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눈먼 자만이 음악속의 색채를 보고 귀먹은 자만이 그림속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막 도착한 울음들이 지나간다. 울음의 색채는 다양하다. 수많은 사유의 별들 사이에서 완벽한 소통을 끌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완벽한 체계를 이루려는 소통의 열망이 울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의 열망이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더 뜨겁게 울어야 한다. 이 소통에는 사랑의 열망과 해방의 열망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열렬하고 큰 힘으로 나타난 것이 민족의 광복이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은 울음소리마저 제대로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억압과 통제의 굴레 속에서 속으로 삼킨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 8·15광복인 것이다. 광복의 환희가 거리마다 넘쳐나고 희망의 소리들이 골목을 누빌 때, 감격의 울음소리는 방방곡곡에 새겨졌을 것이다.
 
광복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의 빛을 되찾는 것이다. 민족의 빛으로, 환희의 소리로, 서로의 손을 잡고 울었을 것이다. 한 세대를 건너 남은 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이루고 미래를 개척한다면, 남은 자들이 쓰러진 자의 얼굴에 뿌려지던 유일무이한 언어가 바로 위무의 울음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울음을 몸속에 가두어 두고 영혼의 안식처에 뿌려야 한다. 이 환희의 소리는 슬픔을 무너뜨리고 자의적 세상을 만드는 큰 힘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36년을 돌아 나온 울음은 장엄하고 숭고하다. 땅속에서 숨죽이며 유충의 날을 보내고 나와 며칠을 울고 가는 매미의 비장한 울음처럼 8월은 이렇게 간다. 아무리 뜨거워도 골목마다 숨어드는 비명과 슬픔을 삼키면서 붉은 봉숭아처럼 뜨겁게 물들이며 간다.
 
죽어서 도착하는 미래란 없다. 고열로 펄펄 끊고 있는 몸에 울음의 체온계를 대어 본다. 이 체온이 생명의 탄생인 것처럼, 이 온도가 생명을 표현하는 자연계의 언어인 것이다. 죽음과 대면하는 순간 살아 있음을 직감하듯이 뜨거운 대기의 온도를 느낌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가끔 심한 열병으로 몸의 온도가 40도를 오르내리면 혼몽한 밤이 찾아오고 신체 감각이 무뎌지기도 한다. 어두운 소리들이 죽음에 물든 것처럼 밀려온다. 나는 그 속에서 꿈을 꾸기도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무수한 자아들이 맹렬한 풍경을 그리며 알 수 없는 울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터지는 고통의 형세가 요란스럽다. 불안의 붉은 덩어리가 울음의 이름으로 익어 터진다.
 
입추도 넘기고 말복도 넘겼다. 햇살의 양동이를 들이붓고 있는 눈부신 태양도 알고 보면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는 울음의 노동자인지도 모른다. 밖에는 어두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매미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하늘에 적을 두고 날아다나던 새도 뜨거운 지상에서 눈을 감았으므로, 지상의 무용담이 하늘로 오르고 하늘의 무용담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팔월의 감정을 다시 새긴다.
 
열대야가 가시지 않는 열섬의 도시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며, 바람보다 먼저 닿아야 했던 슬픔의 수집가처럼 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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