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훈 마르떼 대표

다른 지역의 모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난히 지하주차장이 복잡했던 탓에 주차할 자리를 찾기 위해 똑같은 자리를 돌던 그때 한쪽 구석에 주차요원들이 모여 상급자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보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고, 인격모독적인 고함소리가 주차장을 쩌렁쩌렁 울려 댔다. 다른 손님들이 그 장면을 쳐다본다고 주차장은 더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비스를 최고로 치는 대형 백화점에서의 직원 교육은 일반인들이 생각했을 때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한다. 한때는 백화점 내 서비스교육의 파행이 폭로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고객을 위한, 사람을 향한다던 공간이 정작 직원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인격적 갑질(?) 공간이 되어 버리는 양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수많은 문화기획자들이 있다. 문화기획자들은 지역 시민들의 문화복지와 더 나은 문화 향유를 위해 관공서로부터 사회단체 지원금 혹은 민간보조금을 지원받는다.

매년 초가 되면 지원금과 보조금을 받기위해 각종 사업계획서와 행사계획서들이 풍년을 이룬다. 지역문화 부흥을 위한 일종의 사명감으로 많은 기획자들은 밤낮을 설쳐가며 행사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결과 도시의 문화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해가고 있다.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기획자들의 갑질(?) 관행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획자들은 많은 수익을 가져가지는 못하지만 그 수익금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다. 바로 문화기획권, 기업으로 말하면 '인사권'이다. 기획자들에게 잘못 보이거나, 아닌 말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경우 지역 문화행사에서 제외되거나 열외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역의 문화행사에는 예산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메이저급의 문화예술인들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하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있다. 거의 대부분이 지역 문화인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지역 문화행사는 지역 문화인들에게 새로운 등용문이 되고 경력을 쌓아 또 다른 지원금을 공모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는 장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보수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무대만 설수 있다면, 일을 배울 수 있다면…'이라는 기대 속에 모든 것을 감내해 가며 기획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애를 쓰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도시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흔히 말하는 '기획자 라인'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기획자 라인에 포함되기 위해 암묵적으로 다른 기획자가 꾸려나가는 프로그램에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단체와 예술인들도 있다고 한다. 결국 기획자들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물밑에서는 지역 예술인들의 눈치보기 작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기획자들의 오만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다. 지역 시민들에 의해, 시민들을 위한, 사람을 향하는 질적 방향성을 지니는 삶의 형태이다. 기획자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생태계 피라미드와 먹이사슬의 행태가 누구를 위한 기획인지, 누구를 위한 방향인지를 인지하여야 한다.

결국 지역 문화예술인들도 지역의 시민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지할 필요가 있다. 기획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지원금을 주는 관공서가 아니라 지역시민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다.

문화는 절대 제로섬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지역문화는 소유의 개념이 아니다. 경쟁과 배제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출발하여 함께 지속가능한 동반성장의 모습을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도시기획자는 밑그림을 그리지만 문화기획자는 그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고 색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높은 고층의 경관과 도시미관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도시문화의 기획이 함께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도시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각 지역의 문화기획자들은 희생이 많이 따른다. 문화기획자들은 지금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사명감 하나로 수많은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먼 훗날 기획을 내려놓는 시점에서 지역시민, 지역 문화예술인들로부터 존경과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문화기획자를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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