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고장 전남 벌교를 방문했다. 나의 20대에 등장한 책의 무대는 작가가 묘사한 그대로 산과 바다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고, 역사의 격동기를 겪었다고 하기엔 소박한 동네였다.
 
대학시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라면 흔히 '빨간책'이라 불리던 '태백산맥'을 접하지 않은 학생이 없을 정도로 이 책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한 두려움과 작품의 이적성 논란으로 인한 압박감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책에 대한 규제가 풀린 후에야, 읽어야 하는 숙제를 해결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왜 그토록 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에 열광했는지, 작가가 대중에게 호소하려 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런 관심 덕분에 '태백산맥'은 내 생애 가장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 읽은 책으로 남았다.
 
책은 1945년~1953년 사이의 벌교와 지리산 일대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가장 멸시당하고 가장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의 현장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와 다르게 이데올로기의 공세가 휘몰아쳤던 20여 년 전 당시 사회 분위기를 돌이켜보면, 책 내용에 대한 논란은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염상진과 염상구 형제의 비극, 첨예한 이념 대립 속에서 갈등하는 김범우, 지주의 아들이지만 좌익을 택하고 빨치산으로 남아 최후를 맞는 김범준, 무당의 딸로 기구한 운명에 순응해 장하섭과의 로맨스로만 묘사될 것 같았지만 결국 좌익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던 소화, 전형적인 친일파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최익승 등 수많은 인물들이 그 당시 겪어야 했던 이념의 갈등과 애환을 책은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 묘사는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 따라 사회적 현상의 승리와 패배를 구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한 일깨움이 내겐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살아가는 길을 일러주었다. '태백산맥'은 나의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 일정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작가 조정래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하소설 '아리랑'과 '한강'도 찾아 읽었다.
 
'태백산맥'을 읽은 지 15년이 지났다. 현재 나는 시민운동을 하는 운동가다. 과거는 과거일 뿐일 수도 있지만,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이자 미래이다. 왜곡된 역사가 현재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 작은 힘이지만 올바른 사회를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과 인생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기가 힘들다. 자국의 역사를 배우는 것 보다, 영어 배우기에 에너지를 더 집중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역사를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작품을 통한 역사의 경험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작가 조정래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작가의 역할에 대한 의미로 해석된다. 적어도 그 의미에 내가 부합되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나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하루에 감사함을 느낀다.


>> 이소영은
이소영은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김해사랑청년회 회원과 김해여성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김해여성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연대활동을 통해 진보연합 공동대표, 김해교육연대 공동대표, 아동·여성인권 김해시연대 공동대표, 간병요양보호사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김해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아 김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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