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美 시카고 재앙 탐구
폭염만이 원인인 것 아냐
정치적 실패가 야기한 비극



우리는 그동안 폭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니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무시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하지만 올여름 우리는 '111년 만의 폭염'을 맞았다. 이번 폭염은 우리나라에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처음 찾아온 '역대급 폭염'이었다. 이를 통해 폭염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며, 폭염이 치명적인 형태의 재앙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폭염의 실체를 말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재앙 형태의 폭염 실체를 확인했다. '폭염 사회'는 23년 전 시카고에서 수백 명이 폭염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을 다룬 책이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무엇이 시카고를 재앙에 그토록 취약하게 만들었는지 탐구한다.
 
1995년 7월, 시카고에 사상 유례 없는 폭염이 몰아쳤다. 낮 최고 기온이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7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구급차는 모자랐고, 병원은 자리가 없어 환자를 거부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사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듯이 폭염을 재난이나,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폭염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홍수나 폭설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현지 조사는 폭염 사망자들이 실려 온 한 시체 부검소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검시관들이 의학적 부검을 하는 동안, 그는 희생자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에 이들의 생을 앗아간 단서가 돼줄 사회학적 요인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희생자들의 거주지는 하나같이 사회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나 싸구려 호텔들이었다. 저자는 이들 지역에 머물며 수시로 현지 조사를 나갔고 차츰 안면을 트게 된 이웃들은 클라이넨버그와의 인터뷰에 응한다. 물론 클라이넨버그 자신은 경찰 보고서를 분석하고, 시체 안치소의 기록들을 파헤치며, 통계 분석을 하는 방법으로 이 사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클라이넨버그는 그 당시 치명적인 폭염에 의한 죽음을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비극의 관점에서 접근, 정치적 실패로 규명한다. 또한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 문제라고 진단 내린다. 폭염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몸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쓸쓸한, 혼자서 더위를 견뎌야 했던 이들이었다. 특히 열악한 주거 환경은 취약계층 주민들을 더 심각한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고, 폭염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폭염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빈곤과 고립이었던 것이다. 클라이넨버그는 또 정부의 폭염 사태에 대한 부인과 침묵의 태도는 폭염 당시에 재난에 긴급히 대처해야 할 공공 기관의 대응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꼬집는다. 물론 이것만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폭염 참사는 공공재화를 잘못 다룬 정부의 문제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공학 기술적 대처의 실패고, 시민사회가 서로를 보살피지 못한 공동체 부재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책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폭염도 문제이지만, 재앙을 극복하는 데는 취약계층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가 이들을 그렇게 살도록 방치했기에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실제 시카고 서쪽에 인접해 있는 마을인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독거노인 비율이나 빈곤율도 비슷한데, 범죄율이 높은 노스론데일이 사우스론데일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은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지역 여건과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저자 클라이넨버그는 당부한다. 시카고 폭염을 도시 괴담의 하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여름이 지나간다고 해서 '폭염의 사회학'이 던지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취약계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폭염과 같은 재앙이 다가왔을 때, 죽음의 도시는 반복될 것이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다. 

부산일보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