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마니아의 인문학적 풀이
'평등의 술' 기원부터 역사까지
 유럽 맥주를 테마로 한 세계사



요즘, 맥주를 찾는 이들에게는 이른바 '세계맥주'가 대세다. 세계 각국 맥주의 독특하고 다양한 맛을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골고루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맥주의 특성과 내력을 알고 싶은 맥주 마니아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나왔다. 바로 '맥주에 취한 세계사'라는 부제가 붙은 '유럽 맥주 여행'이다.
 
이 책은 독일 맥주를 직접 양조해서 판매한 바 있는 맥주 마니아 저자가 들려주는 인문학적 맥주 산책이다. 맥주의 탄생과 그에 얽힌 역사, 유럽 맥주 축제 현장, 유럽 각국 맥주의 유래, 그리고 맥주를 사랑한 인물 등 맥주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술 자체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맥주로 풀어낸 유럽사라고 할 만하다. "맥주는 단순한 알코올음료가 아니다. 맥주는 역사이고 문학이며 과학이다. 민중의 혼이다"라는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의 추천사가 이 책의 내용과 결을 짐작케 한다.
 
저자는 괴테의 시에 나오는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왕에서 농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즐겨 마시던 평등의 술인 맥주 산책을 시작한다. 그 계기는 저자가 뮌헨에 머물 때 자주 찾던 슈바빙의 맥줏집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가 하인리히 뵐과 토마스 만의 자취를 발견하면서였다.
 
그 이후 저자의 맥주 순례는 계속된다. 독일에 체류할 때는 중세 맥주 양조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수도원을 순례했다. 귀국한 후에는 더블린의 기네스와 암스테르담의 하이네켄, 플젠의 필스너 우르켈 등 유럽 맥주 공장의 굴뚝이 보이는 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계속된 순례를 통해 저자는 유럽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서민들의 맥주 이야기를 듣게 되고, 여성들에게 특히 사랑받았던 맥주의 특성을 만나게 된다.
 
또 맥주를 사랑했던 루터, 셰익스피어, 슈베르트 등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도 발견한다. 이 같은 취재 자료들이 모여 책이 됐다.
 
책 속 맥주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맥주의 시초는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생을 믿는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에 맥주를 넣어두기도 했고, 노동의 대가로 맥주를 지급받기도 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법은 기원전 1800년경에 만들어진 수메르의 점토판에 새겨진 '난카시 찬가'에 레시피가 남아 있다.
 
맥주를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한 사람은 서유럽 대부분 지역을 통일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롤루스 대제였다. 그는 유럽 곳곳에 세워진 수도원 30여 곳에 맥주 양조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수도원에 일반 양조원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리까지 줬다. 1204년에 세워진 벨기에 수도원 맥주인 레페, 프라이징 수도원에서 현재 뮌헨공대 양조학과로 이어져 생산되는 바이엔슈테판, 수도원에서 민간으로 상표권이 넘어간 파울라너와 프란치스카너 등이 중세 수도원 맥주의 명성과 전통을 잇고 있다.
 
제1부 '유럽, 맥주에 취하다'에서는 이와 같은 맥주의 역사를 말해주는 고대 맥주, 서민들이 즐긴 맥주, 수도원 맥주, 한자동맹과 라거 맥주, 명화 속 맥주, 맥주사의 4대 발명품 등의 글이 실려져 있다.
 
제2부는 '유럽 맥주 산책' 코너다. 세계적 명성의 옥토버페스트 맥주 축제를 비롯해 영국 선술집 펍과 독일의 야외 카페 비어가르텐이 모습을 드러낸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등 당대 문인들의 정신이 깃든 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도 언급된다.
 
이 밖에 황제가 사랑한 맥주 필스너 우르켈, 영원한 라이벌 하이네켄과 칼스버그, 제국주의의 상처 위에 핀 꽃 칭다오, 호프브로이하우스 등 뮌헨의 6대 맥줏집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아돌프 히틀러가 대중 소통과 선동의 장소로 활용한 이른바 '핫플'이었다.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 역시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단골이었다.
 
제3부 '맥주를 사랑한 사람들'에서는 맥줏집을 사랑한 독재자 히틀러, 수녀원 맥주 양조사와 결혼한 종교개혁가 루터를 비롯해 셰익스피어, 슈베르트, 베토벤, 아인슈타인 등 역사적 인물과 맥주에 얽힌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깊고 융숭한 유럽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쌉싸름하고 고소한 맥주 여행을 떠나고 싶게 하는 책이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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