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사 1600년 명암 풀어 써

"세속의 길 걸어 시대정신 외면
 과거 반성 통해 현실 돌아보길"



대한불교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에 대한 불신임이 가결되면서 다음 달 치러질 차기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기존 중앙종회와 개혁파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작금의 조계종 내부의 종권 투쟁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승려와 신도, 국민들이 많다. 실망과 안타까움의 감정, 그리고 비판의 시선이다. 그만큼 불교는 대중적인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점에서 한국불교 1600년의 민낯과 명암을 솔직하고 쉽게 풀어 쓴 이야기 한국불교사가 출간돼 눈길을 끈다. 역사가 이이화가 쓴 '이이화의 이야기 한국불교사'가 그 책이다. 이 책은 기존의 한국불교사가 사상사에 치우쳤던 것과는 달리 역사의 실체에 치중한 한국불교사회사이자 본격적인 한국불교 통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불교가 국가 통치 시스템으로 작동했던 삼국시대부터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수모를 겪었던 격동의 1980년대까지 한국불교사 전반을 한국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통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특유의 이야기체로 풀어낸다. 이런 시각과 서술 방식은 일반 대중이 불교와 불교사를 한층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내용상으로도 그동안 불교가 주로 문화재나 인물에 초점을 맞춰 학술적인 측면에서 다뤄져 온 것과는 다르다. 한국불교사를 단독으로 다룬 역사물도 대부분 사상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불교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의 종합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책처럼 역사 교양서로서 불교사를 조명한 경우는 드물다.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600여 년의 불교 역사를 편년체의 시간순으로 서술한다. 또한 불교의 명과 암, 영욕의 사건들과 사회적 맥락들을 꾸밈없이 제시하면서 한국사 전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역사적 실체로서 재탄생시킨다.
 
고대 삼국시대의 불교는 모든 계층이 신봉하는 국가 종교이자 통치 이념으로 작동하며 강력한 왕권의 형성과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됐다. 고려시대 몽골과의 혹독한 전쟁 속에서도 민심을 모으고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는 불교의 힘이 컸다. 팔만대장경이 바로 그 증거다.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활약상이 눈부셨고, 전쟁 이후 외교사절로서 일본에 끌려간 포로를 송환하는 데도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불교사에는 이처럼 빛나는 장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불교는 역사 속에서 부패와 정화를 반복했고, 존경과 핍박을 번갈아 받아 왔다. 시대에 참여하기도 시대를 외면하기도 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빛에 가려져 있었던 불교사의 어두운 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사의 어두운 지점은 한두 곳이 아니다. 고려 말에는 절에 하사된 토지와 노비를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는 등 불교계의 부패상이 극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에는 주자학에 밀려 침체를 면치 못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동방요배를 강요받는 등 친일 정책에 예속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사찰 정화를 빌미로 한 비구와 대처승 간 분쟁이 유발돼 폭력과 법정 소송이 전개됐다. 1970년대에 들어 불교 분쟁은 대체로 마무리됐으나 조계종 내부에 사찰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잔존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불교계는 오랜 시련으로 독재 시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저항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지 못했으며,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도발된 이른바 '법난'을 겪으면서 내외로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산업화 시대의 오늘날에는 일부 승려들이 탐욕에만 눈이 어두워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세속화 현상이 심해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002년 출간되어 현재는 절판된 '역사 속의 한국불교'를 수정하고 보완해 이번에 출간된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불교가 이 땅에 수용된 이래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지나치게 세속의 길을 걸어 때로는 시대정신을 외면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현실을 돌아보고 고통받는 민중에게 더 다가가야 할 것"이라고 역사가로서 한국불교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산중불교를 존중하되 중생 제도의 가르침을 세간의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한국불교의 화두는 평화와 공존과 인권이 돼야 한다는 게 역사가인 저자가 한국불교사를 통찰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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