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해반천

선용

깻돌의 키만큼도 안 되는 물
발을 담근 채 길게 누운 둑길
뱀허물처럼 꼼짝 않고 있다
목이 타 시든 풀과 나무의 손가락질에
비는 야단맞을까 봐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이랴이랴 게으른 소 같은
 비를 끌고 올 수도 없고
 하늘만 보고 있는데
 빼꼼 문을 열고 내다보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친다
"저기 어깨에 비를 잔뜩 짊어진
 구름이 오고 있어!"
 그 소리에 심술쟁이 염제 할아버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고
 둑길도 그제야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작가노트>

“아이들을 보라”


올여름은 징그럽게도 더웠다. 지구온난화라고 하지만 너무 심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힘이 빠진다. 시원하고 찬 것만 생각난다. 여름은 더워야 곡식도 과일도 튼실하고 달게 영근다고 알고 있지만, 덥다 못해 바짝바짝 타들어 가기까지 하니 사는 맛이 안 난다. 염제(炎帝)가 밉다. 그 심술에 정이 떨어진다.

갑자기 '알맞다'란 단어가 생각난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살기에 꼭 알맞은 그런 계절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 삶도 그렇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알맞을 때가 가장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다. 노력하여 알맞게 하는 것이 지혜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보라. 그 싱그러운 꽃들의 예쁜 모습과 웃음소리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 이 각박한 삶속에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푸른 미래가 있지 않은가.

고향을 잊지 말자. 동심은 바로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며, 아이들은 고향 마을을 지키는 한 그루 나무이니까.
 

▲ 선용 시인.

·1971년 '소년세계' 등단, 부산 MBC 어린이 문예주간
·방정환 문학상, 아시아 번역상
·시집 '고 작은 것이' 외 번역집 다수
·가곡집 '김해 찬가' 외 다수
·김해문인협회 회원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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