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조선인대학살 등
일본 인종주의적 폭력사 조명
"민주주의·사회 파괴할 수위"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란 긴 이름의 단체가 있다. '재특회(在特會)'라는 약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집단은 2009년부터 일본 도쿄 시내에서 가두행진을 벌이며 혐한(嫌韓) 내용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혐오 발언)를 내뱉거나 조선학교 근처에서 확성기를 사용해 아이들을 상대로 욕을 하는 짓 등을 한다. "변태 조센진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등 극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2016년 일본 정부가 '본국 외 출신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일명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을 만들자 혐한 단체들의 시위는 외형상 줄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 등에 관한 처벌 조항이 없고 거리 시위나 인터넷에서의 혐오표현까지는 규제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고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혐오'와 '차별'은 쌍둥이다. 혐오는 차별적 구조에서 싹트고 이를 공고화한다. 앞서 언급한 일본 내 조선인 사례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차별과 혐오를 목격할 수 있다. 주변의 학교·직장에서도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진행된다. 혐오와 차별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저자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실증하는 사례들을 제시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는 재일조선인 3세로 반(反)인종주의 활동가인 량영성이 쓴 책이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 인종주의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 사회적인 조건과 원인을 조명한다. 유럽·미국 등 국제적인 반인종주의 규범과 법을 비교해 보며 일본에서의 '인종주의 척결'과 '극우 억제'를 위한 방안도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을 겨냥한 혐오표현의 역사적 배경 중 하나는 조선적(朝鮮籍)이다. 조선적은 1947년 5월 일본 정부가 외국인 등록령에 따라 일본에 남은 한반도 출신자에게 부여한 임시국적을 말한다. 남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식민지 시대 조선 호적 등록자를 그대로 조선적으로 묶어 놓았다. 일본 정부는 이후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후 한국적(韓國籍)에만 협정에 따른 영주 자격을 인정하고 조선적을 배제했다. 권리를 원하면 한국적으로 바꾸라는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분리 공작은 민단(民團)과 조총련 간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한국적과 조선적으로 분리한 것은 '일본제 38선'을 일본 정부가 만든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펼 때 이를 악용했다고 비판한다.
 
책은 일본 내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폭력사를 조명한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대학살과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재향군인을 중심으로 한 폭력사건, 1960~70년대 증가한 조선중·고교 학생(조고생) 습격사건, 나아가 1980년대 후반 빈번해진 '치마저고리 찢기' 사건까지 망라한다. 저자는 일본 내 재일조선인을 겨냥한 혐오 표현과 관련해 보통 사람이 인종주의와 외국인 배척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며 조직되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 보통 사람이 인터넷의 선동성에 의해 처음부터 차별을 목적으로 한, 게다가 거의 놀이 삼아 '운동'에 참여하고 또 반복하고 있는 패턴을 소개하며 "민주주의와 사회를 파괴할 만한 수위로까지 상승한 가장 위험한 인종주의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학교·직장 등에서 반복되는 차별과 집단 괴롭힘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의 도덕성 결여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뇌 과학자이자 의학 박사인 나카노 노부코는 이러한 명제에 반기를 든다. 그는 "인간은 종(種)으로 존속하기 위해서 차별과 괴롭힘 같은 사회적 배제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차별, 뇌 호르몬 이상으로 발생
서열 문화 등 환경적 요소 작용
연령·상황별 사례로 방어법 제시


개인의 도덕성과는 관계없이 옥시토신·세로토닌·도파민 등 뇌 속 호르몬이 '이상 작용'을 일으키면서 차별과 괴롭힘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책 제목대로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얘기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소도 한몫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열을 매기는 문화가 뿌리 깊이 박히면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로, 성장할수록 학벌과 성별, 외모·직업·연봉 같은 조건으로 차별과 괴롭힘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는 것이다.
 
차별 가해자들은 절대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 즉 강자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신 상대적 약자 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공격하고 짓밟는다. 상대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곧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책은 뇌 속 호르몬 작용으로 이러한 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차별이 우리 일상에서 아주 평범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악의 평범성'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차별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 만큼 그 차별이 쉽게 나타나는 사회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잘 짚어낸다. 마지막에서는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을 연령별·상황별 사례를 통해 제시해 실용서로의 면모도 보인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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