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선임기자

'평당 1억 원'.

서울의 어느 아파트가 3.3㎡ 당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는 뉴스가 최근 이슈가 되었다. 소박한 크기의 주거공간인 전용 59㎡짜리가 24억 5000만 원에 거래됐다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이 꿈인 봉급생활자라면 생활비를 아껴 매달 1백만 원씩을 모으더라도 200년 후에야 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 20년이 아니라 200년이다.

다른쪽에서는 '주택 이외 거처', 즉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가구가 점점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 50만 6000가구로 전년보다 5.6%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주택 이외 거처'란 여관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음식점의 쪽방, 찜질방 등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가구원 수에 비해 침실이 부족하거나 욕실이나 화장실, 부엌 등을 다른 가구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우 등을 말한다. 지난해 이들 가구는 전국에 114만 가구로 전년도에 비해 10.7% 늘었다는 국토교통부 발표다.

이렇게 주거환경에서 천당과 지옥, 그 극단적인 양극화가 이뤄지는 곳은 주로 수도권이다. 그런데 거기서 버스를 타고 불과 1, 2시간만 이동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사람이 사라지는, 그래서 소멸이 예상되는 묵시록적인 공간들이 나타난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에서 소멸위험지역이 89개에 달한다는 한국고용정보원의 발표가 얼마 전에 있었다. 소멸이란 말 그대로 없어진다는 것인데, 대한민국 국토의 40%는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동네가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이다. 5년 전에 비해 소멸지역이 14곳이나 늘었다니 이런 경향이 가속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땅덩이에서 한쪽은 3.3㎡당 1억을 호가하고, 다른 쪽에서는 인기척이 없는 빈 집들이 즐비한 이런 공간 활용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 극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어째서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나. 이는 지난 수십 년 간 누적된 정책과 그에 따른 재정투자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 국토 전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서울과 수도권, 그 중앙에만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육성된 탓이다. 그 결과 서울에 가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서울에 가야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현실이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다. 노무현 정부가 천명한 국가균형발전 시책이 꾸준히 지속되기만 했어도 지금과 같은 공간의 비극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얼마전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약속했지만 지난 잃어버린 10년의 공백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으로 이같은 공간 불균형을 추동하고 가속화시키는 근본 요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몇 년 전 한국에 온 세계적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과연 도시화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지 아니면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금융위기 당시를 예로 들었다. 미국에서 8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금융기관에 압류 당해 집을 잃었고,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이를 저렴한 가격에 사들였다. 이들은 사들인 주택을 임대해 300%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 빈곤계층 재산이 상류층으로 흘러 들어가는 부의 재생산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부의 양극화가 불러오는 공간의 양극화는 국민 대부분을 질곡에 빠뜨린다. 이제라도 이를 바로잡는 정책을 과감하게 펴야 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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