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시골의 사계절을 모두 담아내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수고롭고 느리게 살아가는 소박한 일상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조용한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 잔잔한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무엇일까? 획일적·기계적으로 휩쓸리듯 흘러가는 분주한 삶에 지친 도시인들의 '소확행' 열풍, 거기에 맞아떨어지는 힐링을 선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틀린 말이 아니나, 개인적으로 더 주목하는 부분은 고도화된 문명으로 인해 '본연의 존재적 자리'에서 멀어진 현대인들의 결핍과 필연적 그리움이다. 분명 '자연의 일부'면서 아닌 척 이탈해 왜곡된 궤도를 독자적 리듬으로 돌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 욕구'라는 차원까지 접근해 들여다볼 필요도 있으리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판 버전에서 끌어낼 수 있는 생각거리가 훨씬 풍부하고 깊다. 자연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어릴 적 생생한 생활교육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 손으로 직접 재배해 마련하는 정직한 한 끼보다 한 끼를 살 수 있는 돈이 더 대접받는 사회에서 그 수단을 얻기 위한 일에 매진하게 되는 가치의 전도를 꼬집고 있기도 하다.

"지금 느껴,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갈래 돌아갈래"라고 읊조리는 엔딩곡처럼, 우리 본성대로 자연의 일부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때 우리 삶도 더 건강하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 이제 자연은 더 이상 현실의 '도피처'가 아닌 결국 돌아가야 할 '잃어버린 고향'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이 본래 속해 있는 자연의 타이밍에 맞춰 살다 보면 요즘 추구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저절로 얻는 덤일 테니,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진취적이고 기꺼운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지금까지 우리를 품고 키웠으며 휴식과 위로까지 제공해온 자연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단단한 콘크리트 방어벽 안에 머무른 채 흙만 만져도 병균 운운하며 더럽다고 난리를 치고, 벌레를 보면 징그럽다 기겁하며 밟는 등, 인간 위주로 판단해 자연을 낯설고 경계해야 할 적대적 대상으로 여기진 않았던가? 만물의 영장이니 그럴 권리라도 있는 듯 동물을 학대하고, 환경이 파괴되고 온갖 생명이 고통으로 몸살을 앓는데도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인위적 공해를 야기하진 않았던가?

이렇듯 스스로도 자연임을 망각하고 오만불손하던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함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기 파괴를 가속화시키는 총체적 재앙을 낳고 있다.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우리 생활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플라스틱 문제는 특히 심각한데, '미세플라스틱'이라는 형태로 우리 환경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직면한 세계는 지금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이 한창으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비닐봉지와 일회용 빨대 사용을 지양한다.

플라스틱 소비량이 2015년 기준 세계 3위로 중국과 일본의 배가 넘을 만큼 월등히 많은 우리나라 역시 동참하고 있는데, 김해에서도 지난 7월 시민감시단이 출범했다. 인류멸망 시간을 가리키는 '환경위기 시계'를 가속화시키는 요인 중 '생물다양성'과 '생활습관'이 '기후변화'에 이어 공동 2위로, 지속 가능한 미래가 아직은 우리의 손을 완전히 떠난 것 같지는 않다. 자연의 일부분으로 더부살이하는 인간의 관계를 생명공동체요 운명공동체로 명확히 인식하고 환경을 살려야, 그 속의 우리도 산다. 원한다고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불편의 감수가 곧 생존과 직결된다. 모두를 살리는 변화의 한걸음, 우리의 선택과 결단만 남았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