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라보고 연결하는 창
생각 통제하고 감시하는 도구
반감이 예술로 승화되기도



텔레비전(Television)은 묘한 물건이다. '바보상자'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은 반대로 '스마트TV'로 격찬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면 그의 물질적 특성은 잊히고 화면에서 구현되는 이미지의 세계로 빠져든다. 가구 혹은 가전제품으로 인식되는 물리적 존재이자,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문화적 기제'라는 이중성을 갖는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크리스 호록스는 '텔레비전의 즐거움'에서 텔레비전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이미지를 생산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의 '모순성'에 대한 호록스의 설명은 계속된다. 그는 "텔레비전은 여느 인공물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사물이다. 존재와 부재(不在) 사이에 머물기 때문"이라며 "세상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발달한 텔레비전은 모순되는 사물이다"고 규정한다.
 
'텔레비전의 즐거움'은 가전제품과 같은 '물질적 대상'으로서 텔레비전과 '환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미디어 매체로서 텔레비전이라는 두 개념으로 정의해 접근한다. 빛나는 인류의 발명품인 텔레비전의 변천 과정과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탐색한다.
 
책은 텔레비전의 뿌리를 19세기 심령론(心靈論)과 제국주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자기장 실험에서 찾는다. 영국의 존 로지 베어드, 미국의 필로 테일러 판즈워스와 찰스 프랜시크 젱킨스, 러시아의 보리스 로싱과 블라디미르 즈보리킨 등 신화적인 발명가들이 먼 미래의 가능성쯤으로 인식했던 텔레비전을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 인공물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풀어낸다.
 
텔레비전 수상기는 여러 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디자인과 공예, 대량생산을 통해 시각적·물질적 형태로 구현하면서 가정의 취향이나 계급, 사치에 연결한 사물이다. 1920년대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 텔레비전은 초창기 나날이 발전하는 인류 문명을 대변하는 첨단 과학기술의 집약체였다. 지위와 재력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자 사치품이기도 했다. 가구와 같은 물질적 존재로서 텔레비전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텔레비전과 관련된 기술이 보편화하고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저렴해져 일반인들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게 되자 양상은 달라졌다. 감도가 크게 개선되고 크기는 줄고 휴대성과 신뢰성이 높아졌다. 호록스는 "1950년대 내내 텔레비전 매스마케팅은 텔레비전이 더 이상 낯설고 신비롭지 않은, 일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환경에 텔레비전을 정착시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모순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대중문화의 지배적 구성물로서 텔레비전의 성격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이미지와 메시지는 오래전 모닥불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모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나갔다.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창(窓)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람들은 그런 텔레비전을 '익숙하고 편한 생활의 이기(利器)'로 평가한다. 책은 리모컨과 텔레비전 캐비닛이 가져온 변화와 소형화, 컬러화, 평면화로 이어지는 텔레비전 기술 발전과정을 고찰한다.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책은 텔레비전이 가져온 부정적 이미지와 영향도 빼놓지 않고 거론한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비디어드롬'(1983년)에 묘사된 것처럼 "생각을 통제하고 시청자를 감시하며 정신과 육체를 해칠 수 있는 불길한 사물"로 텔레비전을 여기는 시각을 소개한다. '소비주의의 꽃'으로 중독 증세를 유발하는 텔레비전에 대한 반감과 저항 의식이 비디오 아트를 비롯한 예술로 발전하는 과정도 살핀다. 백남준의 'TV 부처(TV Buddha)'를 비롯해 요제프 보이스, 볼프 포스텔, 세자르 발디치니 등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호록스는 책 후반부에 브라운관이 퇴출되고 평면과 곡면 스크린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사물로서' 텔레비전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상을 언급한다.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존재의 위기'를 맞은 텔레비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도 더해진다. 호록스는 "수많은 시기를 거치며 텔레비전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동시에 욕망하는 대상, 무시하는 동시에 환영하는 대상, 쳐다보는 동시에 그 너머를 보는 대상이었다"는 말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텔레비전의 가치와 의미를 정리한다. 너무도 가까이 있는 사물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물건이기도 한 텔레비전에 대한 철학적, 역사적, 비평적 접근이 꽤나 흥미롭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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