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 낙동강 399

서태수 시인

초겨울 햇살 아래 마른 낙엽 졸고 있다
한 점 물기 없이 다 증발한 무심한 빛
늪으로 오도카니 앉은
허연 강의 빈 껍질

흘려보낸 깊이만큼 하염없는 흐린 눈은
한 생애 굴곡 굽이 어드메쯤 멈췄을까
담장 위 까치밥보다
더 작게 웅크린 강


<작가노트>

모든 것 소진한 처연함의 본질


한적한 시골, 초겨울 양지바른 담장 아래 웅크린 노인의 모습을 한 점 수묵화로 그렸다. 긴 생애 모든 것을 소진한 노년의 모습이다. 무심하게 보이기도 하고 처연하게 읽히기도 한다. 그리하여 당당했던 강의 한 생애가 낙엽으로, 강의 껍질로, 까치밥으로 변주된다. 무슨 상념에 젖었을까. 6·25전쟁의 포성일까. 가난한 농경시절 어린 자식들의 배곯던 모습일까. 도회로 떠난 자식들일까. 어쩌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무심히 앉았을지도 모르겠다. 숱한 고난을 넘어 노령에 이른 노인들. 어두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와서는 이제 곧 한 줌 부엽토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 시대. 곳곳에 웅크린 노인의 현실을 강물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민족 전통양식인 시조의 보법으로 안정적이고 단아하게 갈무리하였다.
 

▲ 서태수 시인.

 

·<문학도시> 수필 신인상
·성파시조문학상, 청백리문학상, 낙동강문학상, 문예시대 작가상 등
·저서 : 낙동강연작 시조집 1~5집 외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김해문인협회 회원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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