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70년 책 읽기 흐름 
베스트셀러 문화·정치적 해석
시대 풍미한 의미 있는 책 소개



최근 출간된 '대한민국 독서사'는 해방 이후 지난 70년간의 '한국 현대 독서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책 읽기 문화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지(知)의 현대사'인 것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책들, 이를테면 '청춘극장'(김내성, 1954)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1978)을 거쳐 '칼의 노래'(김훈, 2001)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독서사가 펼쳐진다. 또한 '조선역사'(김성칠, 1946)에서 출발해 함석헌·리영희·강만길·김현·김윤식·백낙청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른 인문·사회과학 서적 독서의 발자취, 그리고 '자본론', '코스모스', '데미안', '어린왕자'와 같은 기념비적인 외국책들의 수용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특히 이 책은 지난 2003년 출간돼 근대사의 외연을 확장하고 문학·문화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근대의 책 읽기'의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와 동아시아 비교문학과 지성사, 냉전문화사에 천착해온 정종현 인하대 교수의 긴밀한 협업으로 탄생해 그 의의가 크다. 2000년대 이래 역동적으로 발전해온 문학·문화사 연구의 결실을 담아 독서사 뿐만 아니라 지성사, 대중문화사, 냉전문화, 젠더사, 문화제도사까지 아우르는 인문교양서라 할 만하다.
 
독서의 역사는 말 그대로 '읽는 행위의 역사'를 말한다. 즉 독서사란, '누가, 어떤 책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읽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독서 행위를 넘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시대 흐름의 변화에 대해 깊은 탐구와 해석을 거쳐야만 그 실체가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독서와 정치, 독서와 경제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가령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관변 독서운동, 국가의 검열체계, 저항운동으로서의 독서 등에 대한 분석은 독서 문화정치학의 면모를 드러낸다. 또 경제 발전에 따른 소비자와 독자의 성장, 출판자본주의의 발달, 베스트셀러 현상과 대중의 욕망 구조 등은 경제 현상의 하나로서 독서문화를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 책과 지식 풍경' '개발독재와 민족주의 시대의 책과 독서' '산업화시대와 저항의 독서' '세상의 중심은 나' '위기·불안 시대의 책 읽기' 등 총 17개의 주요 흐름으로 대한민국 독서사를 조망하고 있다.
 
각 주요 흐름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의미 깊은 책들을 소개하고, 그 말미에 흥미롭고 인상적인 독서문화의 한 단면을 별도의 팁으로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예를 들자면 '전집과 외판원' '욕망의 시대에 던지는 화두, 무소유' '컴퓨터와 독서·출판문화의 변화' '을화부터 토지까지 TV와 만난 문학' 등 특징적인 독서문화 현상 소개는 시기별 독서사의 윤곽과 흐름을 상징적으로 짚어준다.
 

▲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김해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독서대전’ 중 가야의거리에 마련된 ‘출판사 북페어’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50여 개의 전국 유명 출판사들이 한 곳에 모여 대표도서를 전시·판매했다. 사진제공=김해시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 책은 1950년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인 '자유부인'을 둘러싼 문화정치적인 함의를 성찰하면서 '사상계'와 '광장' 등으로 이어지는 4·19의 시대정신을 되짚어본다.
 
1960년대의 개발독재 시대에는 영웅서사나 역사소설 열풍 등 민족주의의 흐름을 살펴보고, 1970년대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과 통기타·생맥주로 상징되는 새로운 청년문화의 분화 과정과 함께 산업화 시대의 저류에 흐르고 있던 저항의 독서문화를 황석영, 전태일, 조세희 등의 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1980년대는 의식화와 세미나 시대의 청년·학생·노동자 독서문화 한편으로 김홍신의 '인간시장' 등 속류화된 '협(俠)'의 서사로 충만했던 무협지와 만화 등 하위문화에도 주목한다. 공동체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방황했던 '회색인'들의 내면적 갈등과 좌절을 다룬 강석경의 '숲속의 방'과 이른바 '이문열 시대'를 연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등이 소개되고, 서정윤의 '홀로서기' 등 서정시집 열풍 현상도 함께 들여다본다.
 
1990년대는 독서문화 과도기의 지각변동 속에서는 신경숙과 공지영 등 여성 작가들과 독자들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을 살펴본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세상의 중심이 '나'로 재편되면서 불어닥친 자기계발과 성공서사의 열풍, '상실의 시대'의 후일담 문학 등을 다룬다.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강준만 등 진보 담론의 등장과 지성의 재편 과정, 세기말 서점가의 풍경도 스케치한다.
 
2000년대는 성공 담론과 영어 학습서 열풍, '88만 원 세대'와 청춘 멘토 현상, 새로운 가족주의와 '엄마 신드롬' 등 위기·불안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책 읽기 풍경과 마주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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