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성격의 아버지도 책을 읽고 온다고 하면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 일 하기 싫어 꾀를 부린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겠지만 짐짓 모른 척하셨다. 책 한 권도 사주지 못하는 형편이었기에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려 하셨을 것이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나는 그렇게 학교도서관과 친해졌고 책 속에 빠져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가 된 듯 설레었다. 그때의 자양분은 나를 교사로 또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즐겨 읽는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놀라움을 경험하곤 한다. 사람은 자연과학적으로는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여러 번 다시 태어나고 죽는다. 나를 깨치는 한 권의 책이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매력을 재발견하고 읽었던 그림책들은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림책이 '자유의 길'이다.
'자유의 길'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에 대한 선언이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은 1865년 노예제도의 종말을 알리는 법률이 만들어지기까지, 근 350년 동안 북아메리카로 끌려와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프리카인 수천 수만 명의 처절한 기록이다.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들의 역사이자, 현재를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흑인 선조들의 먼 과거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들만의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픈 현실과 자유에 대한 의지를 곱씹게 하기 때문이다.
노예들의 뼈 속 깊은 고통을 고스란히 치받아서 그림 하나하나마다 그들의 영혼을 담아냈기에, 61쪽의 짧은 내용이지만 메시지가 크고 강하다. 로드 브라운은 7년 동안 노예를 주제로 36개의 작품을 그렸다. 그 중 21개의 그림이 줄리어스 레스터의 글과 만난 이 책은 새로운 역사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림책을 '글과 그림의 행복한 결혼'이라고 했던 러셀의 말처럼, 그림 속에 녹아든 시적인 글도 공명의 울림으로 뇌리를 친다. 시대를 뛰어 넘어 현실과 마주서면, 우리가 보듬어야 할 사람들의 팍팍한 삶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비밀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주변에는 여전히 권리를 누리는 데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을 사는 사람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종교가 달라서, 민족이 달라서, 힘이 약해서 인권의 사각 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권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나라, 내 이웃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된다.
>> 조의래 교사는
현 수남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대표,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공동대표, 학교도서관을생각하는사람들의모임 대표 등을 역임했다. 범도민 독서운동 추진위원, 김해의 책 추진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간행물문화대상 대상(2009)을 수상하였고, 쓴 책으로 '즐거운 북아트 교실'(2010·우리책· 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