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시골초등학교를 다녔다. 이제는 폐교가 되었지만 많은 것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고, 일부는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 학교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눅눅한 것 같으면서 잉크 냄새가 섞인 책 향기가 좋았다. 가난한 동네라 어린 고사리 손도 돈사야 했기에, 학교를 마치면 일찍 집으로 가서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소꼴을 베든지 이삭을 줍든지 하는 허드렛일을 도왔고, 고학년이 되면 들일도 함께 했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학교도서관을 찾았다.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도 책을 읽고 온다고 하면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 일 하기 싫어 꾀를 부린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겠지만 짐짓 모른 척하셨다. 책 한 권도 사주지 못하는 형편이었기에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대신하려 하셨을 것이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나는 그렇게 학교도서관과 친해졌고 책 속에 빠져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가 된 듯 설레었다. 그때의 자양분은 나를 교사로 또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즐겨 읽는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놀라움을 경험하곤 한다. 사람은 자연과학적으로는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여러 번 다시 태어나고 죽는다. 나를 깨치는 한 권의 책이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매력을 재발견하고 읽었던 그림책들은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림책이 '자유의 길'이다.
 
'자유의 길'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에 대한 선언이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은 1865년 노예제도의 종말을 알리는 법률이 만들어지기까지, 근 350년 동안 북아메리카로 끌려와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프리카인 수천 수만 명의 처절한 기록이다.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들의 역사이자, 현재를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흑인 선조들의 먼 과거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들만의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픈 현실과 자유에 대한 의지를 곱씹게 하기 때문이다.
 
노예들의 뼈 속 깊은 고통을 고스란히 치받아서 그림 하나하나마다 그들의 영혼을 담아냈기에, 61쪽의 짧은 내용이지만 메시지가 크고 강하다. 로드 브라운은 7년 동안 노예를 주제로 36개의 작품을 그렸다. 그 중 21개의 그림이 줄리어스 레스터의 글과 만난 이 책은 새로운 역사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림책을 '글과 그림의 행복한 결혼'이라고 했던 러셀의 말처럼, 그림 속에 녹아든 시적인 글도 공명의 울림으로 뇌리를 친다. 시대를 뛰어 넘어 현실과 마주서면, 우리가 보듬어야 할 사람들의 팍팍한 삶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비밀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주변에는 여전히 권리를 누리는 데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을 사는 사람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종교가 달라서, 민족이 달라서, 힘이 약해서 인권의 사각 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권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나라, 내 이웃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된다.


>> 조의래 교사는
현 수남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대표,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공동대표, 학교도서관을생각하는사람들의모임 대표 등을 역임했다. 범도민 독서운동 추진위원, 김해의 책 추진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간행물문화대상 대상(2009)을 수상하였고, 쓴 책으로 '즐거운 북아트 교실'(2010·우리책· 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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