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진 생명나눔재단 사무총장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민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 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였다. 이후 논란이 뜨거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정책결정에 앞서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까지 공론화(숙의 민주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공론화의 방식은 시민참여단 또는 원탁토론자들이 정책에 대한 학습과 숙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구조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공론화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절차로서, 참여 주체들이 쟁점을 단순히 투표라는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김해시 또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기 위한 공론화의 장이 활발하다. 장유소각장 증설과 이전을 놓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150인 원탁토론회를 지난 9월에 열었다. 10월에는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시민참여 원탁토론을 개최했으며, 오는 11월에는 사회·환경·경제 분야 전반에 걸쳐 '시민이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김해시 미래계획'이라는 주제로 100인 원탁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주요 정책에 대해 시장과 공무원, 관련 전문가들이 사실상 결론을 내린 뒤 공청회 등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주민 참여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하자는 노력은 마땅히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토론자들이 짧은 시간에 의제를 이해하고 찬·반의 주장과 생각을 공유하여 해답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어떤 결정에 있어서 다른 한쪽의 부정적 감정까지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앞선다.

지난 9월 장유소각장 증설과 이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원탁토론회가 열렸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장유소각장 주변 주민들은 오랫동안 불편함과 부당함을 감내하며 견뎌온 피해자들이다. 악취는 물론 2003년 다이옥신 배출사건 이후 여러 차례 불안한 상황에도 소각장이 이전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인내하며 견뎌온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언제까지 기약 없는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가? 소각시설 증설 외에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여 원탁토론의 결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들에게 '님비'라는 불명예를 던질 수 있는가?

김해시 쓰레기 정책에 감량정책이 있는지 묻고 싶다. 생활·산업 등 폐기물 배출량은 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할 장기적인 종합대책은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쓰레기 감소를 유도한다는 실효성 없는 대책은 구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계속해서 인구가 늘어나 쓰레기 배출량이 증가하고, 지금의 소각장 내구 연한이 넘으면 어떻게 할것인가? 또 다시 증설을 되풀이 할 것인가? 장기적인 쓰레기 처리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한다. 생활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산업폐기물은 또 어떻게 다룰것인지 등 분야별·마을별(주민자치센터) 쓰레기에 대한 맞춤형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시민 중심의 공론화 과정은 매우 중요한 민주주의 절차이다. 다만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공론화는 어느 한쪽만의 피해를 요구하여서는 결정에 무리가 따를 것이다. 어느 쪽이든 피해를 최소화하고 공공적·공익적인 측면에서 납득할만한 결론이 제시돼야 한다. 장유소각장 공론화 원탁토론회에서 의제는 소각장 이전과 증설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늘어날 김해시 예상 인구를 대비한 쓰레기 총량제, 청소행정 혁신, 마을별 쓰레기총량제 및 감량 목표 관리제 등 본질적·장기적 안목에서 다뤄야 했었다.

더욱이 원탁토론회 개최 이전에 김해시가 이미 소각장 증설을 전제로 한 소각시설 광역화사업 기본협약 체결 동의안을 정부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형식적인 절차에 이용당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소각장 증설 사업이 미룰 수 없는 현안의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김해시의 태도는 주민과의 불편한 갈등 지속은 물론 행정당국의 정책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뿐이다. 공론화, 즉 시민원탁토론은 시민 삶과 직결된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이 함께 토론해 공동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순수한 민주주의 장이 되어야 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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