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를 위한 동시조에 몰입하던 1989년 4월 어느날. 사진제공=백수문학관



여린 감성 바닥에 깔려있는 전통운율
맑은 물로 세상 씻는다는 아호 백수(白水)
일제강점기 고문후유증으로 손가락 불구
만년엔 어린이 정서 담은 동시조(童詩調)



민족 정서를 현대 시조로 재구성한 서정시인. 샘물처럼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오염된 세상을 씻는다는 뜻을 지닌 백수(白水)를 아호로 지었다는 시인 정완영을 소개하는 문학관은 경북 김천 황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와를 얹은 콘크리트 건물로 단장한 백수문학관, 입구로 들어가면 시인의 작품이 걸려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여린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의 밑바닥에는 전통적인 운율이 살아있지만, 그 감각은 영락없는 현대시다. 백수가 우리민족 고유의 감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백수문학관 전경.
▲ 전시실에 재현된 서재. 단아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전시실 벽면에는 시인이 살다간 발자취를 알려주는 연보가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김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보통학교 4학년 때인 열살 무렵, 홍수로 인한 재난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5년간 일본 전역을 떠도는 경험 속에서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뿌리마저 잃고 떠돌수는 없다는 생각에 귀향을 단행한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백수가 새롭게 발을 디딘 일이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은 시조 창작이었다. 하지만 나라를 잃은 식민지 청년이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이 평탄할 수는 없었다. 스물한 살 때 발표한 첫번째 작품, '북풍'이 불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시인은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자로 전락했다.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선 시인이기에 향후 작품세계는 더더욱 민족주의 성향을 띨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닫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 시조문학회 창립 멤버로 활동할 무렵 김천 고향집을 찾은 백수 정완영. 사진제공=백수문학관


국민 애송시로 교과서에 실렸던 대표작 '조국'에도 이같은 시인의 정서와 경험이 절절히 배어 있다. 
 
이후 정완영은 1966년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한 작품 '개화'로 널리 알려진 시조시인 이호우와 뜻을 모아 시조문학회를 창립하게 된다. "시조는 민족의 전통 장르이자 후손에 물려줄 자랑거리"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시조 부흥 운동'의 출발점이었다.
 
그토록 더운 피가 끓던 민족시인 정완영도 만년에는 마음의 고향인 동심으로 돌아간다. 민족 전통 가락을 살린 시 구절에 맑고 투명한 어린이의 감성을 담아내는 동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시인의 노력이 '동시조(童詩調)'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 정완영 선생이 발간한 시집들.

 

▲ 정완영 선생이 사용했던 일기장과 안경(위쪽). 시계와 파이프.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큰 나무/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시인이 자랐던 고향마을 그렸던 동시조 살구꽃도 바로 그 무렵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토록 맑고 순수한 감성을 끝까지 간직하려고 노력했던 시인 정완영. 그런 열성 덕분인지 시인은 아흔여덟 살이 되던 2017년까지 장수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 삶 속에서 시인이 남기고 간 맑고 깨끗한 물들이 현대시조의 기틀을 다지는 강물이 되어 그의 아호를 딴 백수문학관에 보존되어 있다. "시조는 우리의 맥박이자 표정이다"는 시인의 어록과 함께. 
 
김해뉴스 /김천=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 경북 김천시 직지사길 118~18.
△ 남해고속도로(40㎞)를 타고 가다 중부내륙고속도로(100㎞)로 갈아탄 후 영남대로(24㎞)를 이용하면 된다. 약 2시간 30분 소요.

*관람 시간
① 오전 9시~오후 6시. 
②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054-436-6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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