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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그림'을 보면 사람도 함께 보인다책(BOOK)
  • 수정 2018.10.24 09:30
  • 게재 2018.10.24 09:26
  • 호수 394
  • 12면
  •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jhp@busan.com)

 

동서양 넘나드는 130여 점 미술품
인간·동물·자연 관계 담론 펼쳐
육식 언급하며 '동물복지' 고민도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의 라스코(Lascaux) 동굴에는 벽화가 있다. 약 1만 700년~1만 5000년 전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1940년에 발견됐다. 벽화에는 빨강·검정·노랑 등의 색깔을 사용해 그린 말·사슴·들소 등 약 100점의 동물상이 그려져 있다. 인간이 처음 그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동물임을 보여준다. 동물들은 구석기인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고 먹이가 되어 구원해주기도 하는 존재였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따지고 보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연한 관심과 '실제적 앎'에는 차이가 있다. '동물 미술관'은 빗해파리부터 호모사피엔스까지 고대와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미술작품을 통해 동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인문학자로 예술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동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사람이 호모사피엔스가 어떤 존재인지 말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 존 제임스 오듀본의 ‘미국의 새들’. 사진출처=궁리

책은 이암·김홍도·신사임당·반 고흐·주세페 카스틸리오네·호안 미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만든 130여 점의 미술작품(99%는 회화, 1%는 조각 작품)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사색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언뜻 보면 화집(畵集)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림과 함께 흐르는 본문은 확연하게 차별성을 갖는다. 미술작품과 화가에 대한 일차원적 소개를 넘어 동물·인간·지구(자연)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담론이 펼쳐진다. 
 
1부 '집에 살던 동물'은 개·고양이·금붕어·낙타·닭·돼지·소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룬다. 인류가 그간 어떤 동물들을 어떤 이유로 사육해서 집과 마을에서 키워왔는지를 살펴본다.
 
'집 동물'이라는 주제에는 반려동물이라는 애틋한 내용 말고도 육식(肉食)이라는 끔찍한 주제가 함께 흐르고 있다. 저자는 "오리털 점퍼를 입고 소가죽 부츠를 신고서 비프스테이크를 썰며 반려견을 애지중지하는 풍경은 어딘지 묘하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반려동물의 시대에 '동물 복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푸줏간 진열대'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소의 얼굴과 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미지이지만 우리가 진정 '개선하는 동물'의 후예라면 한번은 정면으로 마주 봐야만 한다"는 코멘트가 달려 있다.
 
2부 '아주 작은 녀석들'은 '동물계의 왕(王)' 절지동물(곤충류)의 비밀과 자연의 질서에 초점을 맞춘다. 개미·거미·나방·딱정벌레 등 다채로운 곤충 그림과 함께 에세이에서는 이 동물이 어떻게 가장 번성한 생물이 될 수 있었는지를 심도 있게 다룬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와 17세기 중국 화가 윤빙의 '접희도(蝶戱圖)' 등 동양권의 작품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 에른스트 헤켈의 ‘거대 문어’.

가장 많은 미술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3부 '지능의 존재들'이다. 가오리·가자미부터 펭귄·해마·호랑이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해설한 후 '지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동물=본능, 인간=지능'이라는 사고가 매우 잘못된 것임을 설파한다. "삶의 환경 속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능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동물들의 삶도 지능을 충분히 발휘해야만 영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세종의 고손자인 '왕족(王族) 화가'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동물화 작가로 유명한 이암의 '가응도(架鷹圖)'는 꿩 사냥에 인간의 보조역으로 동원돼 활약을 펼쳤던 매의 늠름한 자태를 보여준다.
 
4부 '인간이라 불리는 어느 기이한 동물과 그 선조'는 원숭이와 뱀, 새와 인간을 다룬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의 고유성인지에 대해 진화인류학·인간생물학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인간과 동물, 자연을 공부하며 알아가고 또 그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삶을 바로 서게 하는 초석임을 부각시킨다.
 
책에 수록된 미술작품 중에는 이제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다. 동물의 세계를 연구하고 이를 회화로 기록했던 동물학자이자 화가 또는 일러스트 작가들이다. 숫자가 극히 적었던 이 부류의 화가들은 미술사에서 동물화 또는 식물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들이다. 마리아 지빌라 레미안·존 제임스 오듀본·브루노 릴리에포슈·우스타드 만수르·주세페 카스틸리오네 등등이 그렇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동물이라는 주제에, 그들의 존재에 흠뻑 빠졌던 분들"이다.
 
책은 라스코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구석인들이 삶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내가 살기 위해 나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던 동물들에 대해 가졌던 복합적·다층적인 감정을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책 서두에 실린 "옳은 삶으로 나아가기를 진정 바란다면, 동물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부터 멀리해야 한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저자의 바람을 대변하는 듯하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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