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훈 마르떼 대표

음악(音樂)은 소리 '음(音)'자와 즐길 '락(樂)' 두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이다. '음악'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음악의 사전적 의미는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소재로 하여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음(音)만 한정지은 것이 아닌 소음(騷音)도 포함을 시킨 것이다.

20세기 현대음악은 소음을 소재로 음악의 한 요소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가령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서는 발자국 소리와 관객의 웅성거리는 소리마저 음악의 재료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의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에는 오히려 음악이라기보다는 음악적 전개에 따른 소음에 가까운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음악의 정의는 이처럼 시대를 거듭할수록 의미가 달라 질수 있다.

악보를 살펴보면 수많은 표들이 존재한다. 음자리표(claff), 음표(음표), 쉼표(rest) 등 많은 표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곡가들의 무형의 존재를 그나마 유형의 그 어떤 것으로 옮기기 위한 수많은 몸부림으로 만들어진 표식들이다. 악보를 아무리 똑같이 지켜서 부른다 한들 그 표식들은 작곡가의 의도를 100% 그대로 옮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연주자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분석하고 또 분석하며 연습을 한다.

음표와 음표사이 그리고 음표들이 무수히 있다가도 쉼표가 나온다. 음악은 악보에 나오는 음표가 지정하는 그 음의 높이에 따른 소리와 다음 음표가 지정하는 그 소리의 연결 그리고 잠시 쉬어가는 쉼표가 나오다가도 곧이어 나타나는 음표들의 집합체들의 진행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다 설명 될 수 없다. 바로 음표와 음표, 즉 소리와 소리 사이의 그 간격을 무엇인가로 어떻게 연주자들에 의해 메꾸어 질 것인가를 고민하며 연습되어지는 그리고 단순히 소리가 사라지는 쉼표가 아닌 그 여백을 어떠한 것으로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나은 연주자들의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한, 다시 말해 무의도(無意圖)가 아닌 비의도(非意圖)에 의해 채워지는 그들만의 감정들이 소리와 소리사이의 여백들을 소리 그 이상의 것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그 부분들의 예민한 감정들의 합이 종이위에 그려진 표들의 전개들과 함께 단순한 '소리'에서 '음악예술'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쉼표가 가지는 힘이 음표가 가지는 것보다 어쩌면 더 큰 에너지가 있을수 있다.

말은 침묵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쉼표 뒤에 나오는 음악은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쉼표가 가지는 가치는 음악의 흐름에서 폭풍 전야를 가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니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조용한 음악일수록 그리고 여백이 많은 음악일수록 관객들은 집중하며, 갑작스런 쉼표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침묵은 숨을 죽이며 그 어느때 보다 강한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음악의 시작이 음표라면, 음악의 완성은 쉼표 즉, 음악적 여백이다. 이에 우리는 다시 음악을 이렇게 정의 할 수 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 그리고 쉼을 소재로 하여 박자·선율·화성·음색·여백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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