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창의력 깨우는 ‘키워드’
특정 브랜드가 정체성 형성시켜
개인 무의식 속 욕망 이해 가능



"그동안 욕망을 이성으로 참고 견디고 억눌러 왔지만 그 욕망이 다시 꿈틀거린다면 이 책을 한 번 살펴보자. 브랜드의 그 무엇이 당신을 자극하며 또한 당신은 그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당신의 감추어진 욕망의 본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최근 출간된 '브랜드 인문학-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은 '우리는 왜 브랜드를 선호하는가?' 라는 의문에 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질 들뢰즈에 따르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은 감각이 자극받을 때 현실화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브랜드는 감각을 자극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brand)의 뿌리어는 그리스어 '스티그마'로,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 또는 신분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어느 참주가 충직한 종의 머리를 깎고 살갗에 '스티그마'를 새긴 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를 기다린 다음 사위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은 바로 페르시아에 반란을 꾀하라는 메시지였다. 브랜드는 우리 감각을 자극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가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지점을 들여다보면, 나의 무의식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게 된다. 결국 브랜드 취향은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창의력을 깨우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특정 브랜드와 접속해 생기게 된 우리의 정체성은 잠재력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감각에 자극받아 무엇을 욕망하게 되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접속과 배치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향하는 욕망이 몸에 배면 취향이 되고, 그 욕망과 취향은 결국 내면의 잠재력이 깨어나는 것임을 꿰뚫는다.
 
가령, 프라다에 끌린다면 그 저변에 흐르는 '우아한 실용성'이, 발렌시아가에 끌린다면 '귀족적인 품위'가 내 감각의 지향하는 바일 수 있다. 이러한 취향은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평준화된 시장적 취향에 대한 저항력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자본에 의한 문화의 평준화는 무취향을 만든다. 그것은 결국 사치를 조장한다. 대중문화가 아니라 무취향적인 사치가 하류 문화"라고 지적한다.
 
시골 수도원에서 고아로 성장한 샤넬은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던 수도원 시절에 수녀들이 가꾸던 시나몬·레몬의 향기를 기억해 내고 향수 넘버 5를 만든다. 이처럼 우리의 과거는 감각 자극을 통해 잠재돼 있던 가능성이 집념(욕망)과 결합해 현실적 능력이 되기도 한다.
 
프라다의 경우도 세 번째 경영인인 미우치아 프라다(창업자의 손녀)의 과거 잠재력이 혁신의 계기가 된다. 쓰러져 가는 가업을 물려받은 그녀는 사회당원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신념을 특별한 패션 감각으로 승화시킨다. 여성의 육감적인 몸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대신 우아함을 살리면서도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몸의 노출보다는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패션 철학이다.
 
디자이너들은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한다. 발렌시아가에 대해 저자는 "발렌시아가는 왕실에서 왕가 사람들이 즐겨 입는 의상을, 그것도 3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 시민들에게 입힌다. 그의 스페인 취향은 바로 신비감이었다. 발렌시아가의 작업은 엄격한 건축가나 조각가의 작업 과정에 종종 빗대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조각에 비유될 정도로 신비한 단순성을 드러내는 의상들이 탄생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이 밖에 베르사체는 황금색 안에 성(聖)과 속(俗)을 섞어 넣었으며, 지방시는 패션 창작에 고딕성을 끌어왔다.
 
커피점 스타벅스의 이름과 로고는 이율배반적인 상징성을 띤다. 스타벅스의 로고는 그리스신화에서 뱃사공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끄는 '세이렌'의 형상을 가져 왔다. 반면 상호 이름인 스타벅스는 소설 '모비딕'에서 무모한 아합 선장을 설득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 왔다. 이 브랜드의 로고와 이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리는 세이렌의 매혹에 이끌려 스타벅스의 커피향으로 일상의 권태를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을 잊지 말고 다시 귀향하라는 스타벅의 외침 또한 이 커피점에서 들을 수 있다.
 
저자는 감각의 자극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눈을 뜨기를 바라지만, 결코 어느 하나의 자극에 안주하거나 종속되지 않기를 주문한다. 스타벅스 브랜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일상의 권태를 달래려고 스타벅스 커피 향에 유혹당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어 세이렌의 유혹을 통과한 오디세우스처럼 각자의 목표는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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