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념이나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흔히 집단극화(group polalization)라고 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생각을 모으다 보면, 대체로 더 모험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반면에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더욱 보수적으로 흐르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집단 내의 개개인은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를 원하므로 보다 선명하고 극단적인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인정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험이행이나 보수이행 현상 때문에 집단 내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기보다는 무리한 경우가 많아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다수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민심과는 거꾸로 가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번 10·26 재보궐선거를 통해서 표출된 시민들의 메시지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낡은 이념보다는 누가, 어느 쪽이 더 상식에 맞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느냐의 기준에 따라서 선택을 했다는 의사 표시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세상으로 가자고 모두가 손짓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흔들었던 화두는 혼(魂)·창(創)·통(通) 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남과 다른 창의적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위와 같은 덕목을 가르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젊은이들은 기성의 사회인들에게 자신들의 얘기에 제발 좀 귀를 기울이라고, 제대로 된 소통을 하라면서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도 기성세대와 단절된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표출돼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상대방과 대화하고 받아들이면 변화의 물꼬는 트이게 마련이다. 한 미래학자가 999명에게 "당신은 가장 좋은 생각을 언제, 어디서 하는가?"라고 물었다. 펜으로 쓴 편지 100통, 타자 편지 300통, 이메일 500통을 보내고 전화를 99통 돌렸는데, 응답률이 이메일 5%, 타자편지 38%, 전화통화의 응답은 5명인데 비하여 펜 편지의 응답률은 무려 74%였다.
 
스스로 먼저 성의를 가지고 상대방과 소통하려 했을 때 상대방도 감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변화의 과정과 방식의 문제이다. 세상의 만물이 변한다는 것이 오래된 진리이듯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바뀌게 마련이다. 하지만, 바뀌더라도 바뀌는 과정에서 집단의 정체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정체성까지 잃어버린 변화는 변질에 불과하다.

눈앞에 벌어진 게임의 승패에만 집착하여 원칙도 기준도 팽개치고 그때그때의 시류에 영합하기보다는 그 집단이 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명분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집단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저 집단은 그래도 존재의 이유는 살아 있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명분도 실리도 다 잃어 버린다면, 어느 순간에 그 집단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변화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분출되고 있는 현재의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떤 세상으로 어떻게 바꾸어 가야 할지 즉, 그 내용이나 방법을 몰라서 못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은 것이 두려워서 나서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나 기성세대가 위기가 기회라고 진정으로 인식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길은 열릴 것이라 믿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소통에 대한 진정성을 한번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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