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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판에서 봄을 노래한 저항시인 이상화문학의 향기 - 이상화 고택
  • 수정 2018.11.27 15:54
  • 게재 2018.11.20 17:36
  • 호수 398
  • 16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대구 도심 빌딩 숲속에 자리 잡은 이상화 고택 전경.

 

초기 낭만파 시인에서 카프 동인으로
펜으로 일제 총칼에 맞서는 고난 길

대구 시민들이 지켜낸 '시인의 옛집'
문인·독립투사·교육자로 살다간 발자취


 

▲ 시인 이상화 (1901~1943)

빼앗긴 들판에 민족혼을 심었던 저항 시인. 총칼을 앞세운 일제에 우리말로 맞섰던 민족 시인 이상화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대구 도심을 걷는 산책길로 이어졌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도심 번화가에 자리잡은 이상화 고택. 마당으로 들어가면 늦가을 햇살에 물든 은행나무 아래 시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겨 놓은 시비가 있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봄이 오기를 목놓아 노래했던 시인', '사회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활동했던 저항시인' '민족 고유의 정서를 투명하고 아름답게 완성한 시인'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말없이 보여주는 시 구절이 정겹다.   
 
전시실을 겸한 사랑채로 들어가면 시인이 살다간 발자취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1901년 대구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진취적인 사상을 가졌던 큰아버지와 계몽적인 신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는 저항 시인 이상화.
 

▲ 이상화가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가 남아 있는 사랑방.
▲ 시인이 살다간 발자취를 연대별로 보여주는 사진과 소개글.
▲아내 서순애 여사가 쓴 '부인 친목회 취지문'과 유품들.

 
하지만 시인도 스물 두살 무렵에는 고향 선배인 소설가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 동인이 되어 서구적인 낭만주의에 빠져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목적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오너라 //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침실로 가자, 침실로-"
 
초기 작품 '나의 침실로'도 바로 이 시기에 발표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이 살았던 식민지 현실은 낭만을 허락하지 않았다. 1923년,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면서 도쿄에 머물던 시절에 목격한 '관광대지진 사건'이 시인 이상화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일본 청년들의 손에 죄 없는 한국 사람들이 무참하게 학살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시인이 서울로 돌아와 좌파 문인들의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일제에 저항하는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유학을 포기한 것은 물론이다.
 
"하늘을 우러러/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는/ 울음이 터진다/ 해야 울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하지만 이 같은 저항 시인의 삶이 평탄할 수는 없었다. 스물여덟 살 되던 1928년, 신간회 대구 지회 출판 간사를 맡고 있던 시인이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ㄱ당 사건'에 연루돼 구금되는 등 일제로부터 탄압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 '시인의 옛집' 마당에 세워진 시비(詩碑).

이후 서른 여섯 살 되던 1936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큰형이 체포됐다는 소식으로 듣고 현지로 달려갔던 시인이 귀국길에 일본 경찰에 붙들려 엄청난 고문을 당한 데 이어 3년 후인 1939년에는 시인이 노랫말을 지은 교남학교(현 대륜고)의 교가가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가택 수색을 당하면서 육필 원고까지 빼앗기는 고난 등을 당하다 마흔세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이 가슴을 적신다.
 
전시실을 겸한 사랑채를 빠져나와 대문 쪽으로 바라보면 '대구 시민들이 지켜낸 이상화 고택'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2002년, 도시정비사업으로 헐려 나갈 위기에 처했던 '시인의 옛집'을 지역 문인들의 중심이 된 서명운동으로 되살린 사연이 적힌 글이다. 무려 40만여 명에 달하는 서명자의 울력에 힘입은 군인공제회가 사들여서 대구시에 기부체납한 후 시인의 옛집을 대구 시민들이 모금한 돈으로 재단장한 후 시인의 유족과 친지들로부터 기증받은 유품들을 전시한 곳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대구 시민들의 울력으로 지켜낸 '이상화 고택'. 그렇게 살아남은 '시인의 옛집'이기에 그 속에 서려 있는 시인 이상화의 숨결과 문학 정신도 끝없이 이어져 갈 것이라는 확신 속에 진행된 문학관 산책 코스였다.
 
김해뉴스 대구=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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