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향토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면서 역사물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세트장을 지어 관광 사업에도 활용하는 지자체들도 있다. 또한 전국에는 600여개의 박물관이 있어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한다. 나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열성은 4년 전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되었다.
 
'약방집 예배당'. 이 책은 내 안에 있던 역사에 대한 불씨를 지피게 했다. '약방집 예배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의 하나인 김해교회의 설립 과정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말기인 18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의 근대사를 알 수 있는 실화소설이다. 2007년 제24회 한국기독교 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김해교회를 설립한 배 씨 일가의 삶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설립 초창기 상황과 3·1운동의 전개과정, 일제 강점기 때의 핍박, 민중들의 자발적인 애국운동, 외국선교사들의 조선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결실을 맺어가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6대에 걸쳐 온 가족이 신앙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감동을 받게 한다.
 
나는 책을 단숨에 읽지 않고 아껴 읽고,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1970년대부터 가족사를 모아 정리한 배성두 장로의 증손자 배기호 장로가 가족과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탄생시킨 책이다. 2007년에 발표한 뒤 3쇄까지 찍었고, 지난해 영문판으로 출간되었다. 올해는 13억 중국대륙을 대상으로 중국어판 발간 준비가 되어 있다.
 
김해교회를 설립한 배성두 장로와 그의 아들 배동석 애국지사의 순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가는 이 책에서는 우리 근대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그 역사를 찾아 전국 각지의 현장을 답사했다. 국가기록원, 독립운동연구소, 여러 지방에 기록되어 있는 문헌들을 확인하면서 몇 번이고 울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큰 마음과, 이를 실천하면서 당한 고초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공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에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의료봉사와 구제사업에 전념했던 한의사 배성두 장로가 1894년에 김해교회를 세워 혼란의 시대에 등불을 밝힌 일, 1907년 김해합성초등학교를 세워 3·1운동의 열사를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던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3·1운동 학생주동자로 당시 세브란스 의전(연세대학 의과대학)에 다니던 배동석 애국지사는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책을 읽고 난 뒤 다시 찾아본 문헌 기록에 의하면, 배 지사는 두 눈과 손톱 발톱이 다 뽑혔으며 불에 달궈진 쇠꼬챙이로 몸을 찔렸다. 그 기록은 함안군의 '3·1운동 기록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책에는 얼굴도 모른 채 사진 한 장 들고 멀리 하와이로 결혼이민을 가서 피땀 흘리며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내 온 배성두 장로의 딸 배천례의 사연도 그려져 있다.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초기 이민사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소설의 배경은 김해, 대구, 경성, 목포, 만주, 상하이까지 광대하게 펼쳐져 있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현재 배성두 장로는 동상동 산자락에, 배동석 애국지사는 뒤늦게 대통령 표창과 훈장이 추서되어 대전 국립현충원 건국 애국지사 묘에 안장되어 있다.
 
김해가 낳은 큰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 시민들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 김영기는
사진과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부산 사보편집자 회장을 역임했다. 부산 MBC문화방송 관광수기공모 우수상을 받았고, 컬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김해교회 역사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김해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교회사와 옛 김해의 향토사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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