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과이웃 김해의 예인
순간순간의 느낌, 춤으로 되살아나다④ 최은희 (경성대 무용학과 교수·춤패 '배김새' 총감독)
  • 수정 0000.00.00 00:00
  • 게재 2010.12.21 16:34
  • 호수 4
  • 11면
  • 황효진 기자(atdawn@gimhaenews.co.kr)

   
▲ 남편 고 정진윤 서양화가의 작업실을 리모델링해 만든 김해 생림의 무용실,그 벽화 앞에 최은희 무용가가 섰다.

춤은 에너지의 흐름을 미처 통제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철저히 통제하며 추게 된다. 그렇기에 굿판에서 신이 나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나, 손가락 하나까지 짜인 안무에 따라 움직이는 것 모두 어쨌든 '춤'이다.
 
무용가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춤을 모두 자유자재로 추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되,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나 주제를 충실하게 실을 것. 이것이 무용가에게 주어진 '업'이다.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이자 춤패 '배김새'의 총감독인 무용가 최은희는 이 '업'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이다. 그는 여러 작품을 통해 '에너지의 흐름과 발산을 제대로 표현하는 무용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주 어릴적 재롱 삼아 췄던 율동까지 포함한다면, 그가 춤을 춘 지는 반 백년이나 된다. 그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그가 추는 춤의 근간이다. 학창시절, 발레와 한국무용을 모두 접한 후 최종적으로 한국무용을 택한 최은희에게 '춤의 정신'을 가르쳐준 곳은 다름 아닌 '굿판'이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늘 했었죠.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많이 가졌어요. 그래서 굿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겁니다."

굿판에서 배우고 깨달은 '춤의 정신'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느낌이나 주제를 충실하게 싣는 것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춤의 업'이다

그는 정신문화연구원에 들어간 후 현장조사를 나간다는 명목으로 굿판을 자주 찾았다. 일단은 그가 말한대로 삶과 죽음에 대한 끝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기에 외형적·기교적인 현재 춤의 바탕에 대한 의문이 더해졌다. 그는 굿판에서 사람들의 순수한 믿음, 영과 육신이 교감하는 순간 등을 보았다. 여기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1982년 서울 아르토극장에서 첫 개인전 <하지제(夏至祭)>를 발표했다. 홍인숙 시인이 쓴 동명의 시에 맞춰 춤을 췄다. 같은 해, 굿판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을 투영해 <넋들임>을 발표하고 제4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28살 때였다.
 
이렇듯 80년대에는 무속적인 요소를 바탕에 깔고, 현대인들의 연민과 고통을 담아 춤으로 갈등을 푸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어 90년대에는 생명력을 잃어가는 자연을, 2000년대에는 끊임없이 순환과 생성, 소멸을 거듭하는 우주적인 내용을 춤에 담았다. 그의 작품은 주로 에너지의 흐름이나 삶 속에서 받은 영감을 위주로 창작됐고, 그렇기에 '어렵다'는 말도 자주 들어야 했다. 최은희는 '춤을 보면서 해석이나 스토리텔링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영감에 의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느낌'들을 많이 받으려고 하죠. 그 순간순간 느끼는 것들이요. 정 선생님(최은희는 고 정진윤을 '남편' 대신 꼭 이렇게 불렀다)이 돌아가신 후 미얀마에 가서 탑과 일출을 보며 적막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살려 <일출>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죠."
 
   
▲ 남편 고 장진윤 화백의 추모비.
최은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서양화가 고 정진윤이다. 최은희의 동반자였던 그는 2007년 간암으로 타계했다. 그 당시 최은희는 '완전히 혼자가 됐다'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늘 최은희의 작품마다 무대장치·인쇄물 등에 도움을 주고, 객관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였기에 상실감은 더욱 컸다.
 
"그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바쁘게 지냈습니다. 재작년부터는 한국무용협회장을 맡기도 했지요. 정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로 일을 더 많이 하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사람의 빈자리가 저를 더 성장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현재 최은희는 김해 생림에 무용실을 두고 있다. 이곳은 원래 '정 선생님'의 작업실이었지만, 2008년 리모델링 해 무용실로 만든 것이다. 최은희는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이곳에 온다. 평소 학교업무 등 빡빡한 일상의 틀에 갇혀 살기에,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해 생림 무용실은 '에너지가 다른 곳'이란다. 여기서 받은 영감을 부산에서 작업으로 구체화하기도 한다. '영감에 의한 창작'을 가장 중요시하는 그이기에 특히 의미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 생림 무용실 내부 모습.
지금부터 내년까지, 그는 한동안 바쁠 예정이다. 우선 오는 29일 그가 총감독을 맡고 있는 춤패 '배김새'가 부산 국립국악원에서 <환(還)>이라는 제목으로 25주년 기념공연을 연다. 또한 지난 7월에 발표했던 <시원(始原)의 메시지>를 더욱 구조적으로 만들어 내년 4월 한국무용제전에 올릴 예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내년 10월 중순부터 말까지 부산에서 열릴 '전국무용제'의 프로그램을 짜는 일 또한 그의 손에 달려 있다.
 
안무가, 총감독, 무용가, 교수 등 '최은희'라는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는 많다. 그는 무용학계를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반인들이 춤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은희에게 가장 어울리고 그 또한 가장 있고 싶은 자리는 '무대'이다.
 
"무대는 나를 새롭게 만들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무대에 서면 내 손끝 하나에 관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죠. 그 순간, 내가 관중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힘을 깨달을 때 희열을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춤을 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춤을 만드는 게 다가 아니라, 무대에는 꼭 서야죠."
 
몇 십년 후가 될 최은희의 마지막 무대를 상상해 본다. 조명이 켜지고, 굳은 살이 박힌 맨발로 그가 무대 위를 걸어나온다. 그리고 변함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모습 뒤로 그가 춤과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들이 길게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최은희의 모든 움직임은 한국 무용계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의 섬세한 손끝 하나, 사소한 고갯짓 한번까지도.
 


최은희는
50여편 창작…승무 이수자 지정

최은희는 195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와 동 교육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1978년에 국립국악원에서, 1980년부터 1982년까지는 정신문화연구원에서 궁중무용과 무속무용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실기를 겸비해 왔다. 그 후 부산으로 이주해 부산과 경남의 무속과 민속춤을 연구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한국의 토속적인 제의식들이 근간을 이룬다.
 
1982년 첫 개인 발표회인 <하지제(夏至祭)>를 갖고 그 해 대한민국 무용제에서 <넋들임>을 안무해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는 부산시립무용단 안무장을,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울산시립무용단 초대안무장을 역임했다. 1985년에는 부산 최초의 민간 단체인 '춤패 배김새'를 창단해 지금까지 한국무용을 레퍼토리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창작활동 외에도 전통무용을 습득해 1994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로 지정됐다. 30년이 넘는 무용활동 기간 동안 17회의 개인 공연과 각종 무용제 및 예술제 공연을 통해 50여 편의 작품을 창작했으며, 1998년 이후에는 네 차례의 홀춤 공연을 선보이면서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몸짓으로 과거의 춤과 오늘날의 춤을 되새겨 주고 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효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재미로 보는 주간운세 2020년 9월 셋째 주재미로 보는 주간운세 2020년 9월 셋째 주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비밀글로 설정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