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된 터줏대감 '할배' 은행나무
인근 댐 건설로 마을 수몰위기 처해
경북 안동 용계리 실제 이야기 바탕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는 곳에 사는 할배. 할배는 바로 학교 운동장에 사는 커다란 은행나무이다. 마을 사람들은 700살의 이 은행나무를 친근하게 할배라고 부른다.
 
할배는 이 마을 터줏대감이다. 나무에서 아이가 떨어져 위험했을 때 할배의 수북한 낙엽들이 아이를 보호해주었다. 쨍쨍한 여름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할배의 나무 그늘을 찾아온다. 할배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눈을 피해 조선 군사 100명을 숨겨주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 할배가 슬피 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할배나무는 700년 긴긴 시간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했다. 그 세월을 인정받아 할배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천연기념물이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여전히 할배나무로 불렀다. 
 
언제부터인지 마을 사람들은 모이면 이사 이야기를 한다. 인근에 댐이 건설되며 마을이 수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이사를 해야 하는 사정과 댐의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 한 아이가 갑자기 선생님에게 묻는다. "그런데 할배나무는 어떻게 이사해요?"
 
마을에서 회의가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마을은 사라지더라도 은행나무는 꼭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나무는 곧 마을 사람들의 추억이자 고향이기 때문이다. 마을 어른들은 군청을 찾아가 할배나무가 이사할 수 있도록 부탁하지만, 군청에선 돈도 장비도 없다며 거절한다.
 
아이들은 할배나무를 살려달라고 여기저기 편지를 보낸다. 할배나무 사연은 신문에도 실린다. 마을 철거가 시작될 무렵 극적으로 할배나무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온다. 나무 전문가들은 마침내 할배나무의 이사 방법을 찾아낸다.
 
어떤 날은 10㎝, 어떤 날은 20㎝. 그렇게 할배나무는 조금씩 이동한다. 3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려 마침내 할배나무가 정착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할배나무를 자주 찾아간다.
 
작가는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700살의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사연을 듣고 이 동화를 썼다. 세상을 살다보면, 뚜렷한 성과가 보이는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추억·시간·삶이 담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은행나무의 이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부산일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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