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책(Book)
상생 내세우는 속된 사회계약책(Book)
  • 수정 2018.12.19 12:23
  • 게재 2018.12.19 12:22
  • 호수 402
  • 12면
  •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hyun@busan.com)

 

‘상속제도는 집단적 생존전략’
 동서고금 사례 비교 분석
 불평등·양극화 부른 원인 조명



 
형사취수제는 일종의 사회보장보험이었다? 고려 시대 근친혼과 동성동본 결혼의 진짜 이유는? 서양에는 왜 '꼬마 신랑'이 없었을까? 어떤 남자들이 십자군 원정에 주로 나섰을까?
 
앞의 물음들에 대한 대답의 공통점은 모두 상속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상속제도란 시대의 요청에 따른 한 사회의 대응이며,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 생존전략이다. 신간 '상속의 역사'는 '상속제도는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하는 물음에 초점을 맞춰 이슬람까지 포함한 동서양의 다양한 상속제도와 문화를 비교역사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는 어느 사회든지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은 있기 마련인데, 그들은 자기네 사회가 당면한 주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상속제도를 강화하거나 변경했으며 또 그들이 선택한 상속제도에 종교적·문화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집단적 생존전략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그 사회의 상속제도와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와 풍습을 깊이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형사취수제는 미망인에 대한 든든한 사회보장보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책은 말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편이 일찍 죽고 설상가상으로 단 한 명의 아들조차 남기지 못했다면, 경제적으로 여간 큰 타격이 아니었다. 형사취수 결혼에서 태어난 장남은 망자의 가계를 계승해 망자의 상속분을 물려받았다. 형사취수제는 갑자기 경제적 위기로 내몰린 여성의 생존권을 보장하려는 공동체의 노력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성의 결혼지참금에 관한 사회적 합의이기도 했다. 즉 신부가 결혼할 때 가져온 지참금은 끝까지 신랑 집안의 재산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라 왕실과 귀족 가문의 근친혼이 보편적이었던 데 이어 고려 초기 왕실에서도 근친혼과 동성동본 결혼이 성행했는데, 이는 결국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제도로서 무슬림의 사촌 남매 결혼 풍습과 같은 맥락이었다. 근친혼을 통해 당사자들은 해당 가문이 소유한 부동산, 현금, 보석 같은 유형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자산을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10대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아이를 낳아 기르며, 차츰 성인의 권리와 의무를 배웠다. 그러나 서양 남성은 상속받을 재산이 이미 결정된 다음이라야 장가를 들었다. 책에 따르면 서양 남성은 귀족 자제라도 초혼 연령이 30세 전후였다고 한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상속제도상 만혼이 보편적 추세였기 때문에 '꼬마 신랑'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럽 중세사에 등장하는 십자군운동은 장자 상속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럽 사회에는 게르만 문화와 기독교의 영향 등으로 장자가 가문의 지위와 재산을 독점하는 장자상속제가 널리 퍼졌다. 이에 따라 상속에서 소외된 귀족층의 차남 이하 남자들은 불만 세력으로 성장해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서양 중세사회 지배계층의 말단을 차지하는 기사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호시탐탐 출세의 기회를 노리던 유럽의 기사들은 십자군 원정 참가를 신분 상승과 전리품 획득의 기회로 보고 열렬히 환영했다는 것이다.
 
장자상속제와는 달리 로마의 종신독재관(황제)이었던 카이사르의 권력은 카이사르의 손자뻘인 양자 옥타비아누스에게 상속되었고, 이 모든 권력은 다시 옥타비아누스의 양자 티베리우스에게로 넘어갔다. 그런데 티베리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종손을 입양함으로써 그의 권력은 또다시 옥타비아누스 집안의 자손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갔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효도계약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추세지만, 상속과 관련해 서양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은퇴계약서'가 존재했다. 은퇴계약서는 연금제도가 등장할 때까지 늙은 농부의 생존전략이었다.
 
근대 유럽에서 자작농이나 소작농이 노쇠하면 관습적으로 은퇴계약서를 작성한 후 생업전선에서 물러났다. 대개 은퇴한 농부는 작은 오두막을 지어 살거나 상속자의 집에서 지내며 식품과 난방용 땔감 등을 지급받았다. 이 같은 관습은 높은 수준의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세대교체 의식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이처럼 동서고금의 상속 제도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현재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지구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상속제도의 폐단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재미로 보는 주간 운세 2019년 8월 넷째 주재미로 보는 주간 운세 2019년 8월 넷째 주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비밀글로 설정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