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만 명을 넘어선 김해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시다. 농사를 짓던 논과 땅에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지으며 도시를 확장해 가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역동적인 김해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도시화 이전에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자연마을'에 닿아 있다.
수백 수십 년에 걸쳐 시간의 퇴적물로 생겨난 자연마을들은 김해의 원형질과 같은 것이다. <김해뉴스>는 자연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하고 내일의 방향을 모색해 보는 '김해의 뿌리-자연마을을 찾아서' 시리즈를 연재한다.

▲ 나지막한 돌담, 고목, 기와지붕이 있는 상촌마을의 고풍스러운 골목길. 구민주 기자 kmj27@

"저 논이, 광주안씨 문중이 상촌마을에서 10대째 농사를 지어온 땅입니다."
 
상촌마을 초입의 논을 가리키며 안병숙(51) 이장이 설명했다. 360여년이 넘도록 광주안씨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상촌마을의 오랜 역사를 논이 말해주고 있었다.
 
진례면 시례리 상촌마을이 생긴 것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후 광주안씨 상호군파의 김해 시거조(始居祖) 안경지 공이 함안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생겼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시례 광주안씨 세거지(詩禮 廣州安氏 世居地)' 비석이 마을의 유래를 말해준다.
 
시례리는 뒷산 시루모양의 봉우리를 뜻하는 시루골로 불리던 이름에서 왔다. 상촌은 하촌마을과 신기마을로 이루어진 시례리의 중앙마을로, 윗마을이라는 의미이다. 마을 앞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지만, 마을로 들어서면 나지막한 돌담으로 이루어진 골목길과 고목나무가 남아 있다. 기와집과 선조들을 기리는 재실들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 안봉환 씨가 상촌마을을 이룬 선조들의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상촌마을에는 40여 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밭작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농촌마을이 대개 그렇듯이, 상촌마을도 산업화로 인해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고 대부분 노인가정이다. 그래도 젊은이가 이룬 가정이 3~4구 있고 학생과 아이들이 있어, 마을의 활기는 끊이지 않았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아온 광주안씨 종중인 안봉환(83) 씨 집으로 들어서면 안씨문중의 내력이기도 하고, 상촌마을의 유래이기도 하고, 김해의 자랑이기도 한 흔적들이 있다. 경남문화재자료 제279호인 '김해시시례염수당고문서', 경남문화재자료 제402호인 '김해시례리염수당'의 안내판이 마당에 서 있다. 한말, 김해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예강 안언호를 기리는 '예강제'는 단아한 기품이 묻어난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 가묘, 고방채와 기타 3동의 부속채 등으로 이루어진 염수당은 조선시대 지방 양반들의 가옥 형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안경지 공 이래로 전래되어 오는 총 18점(12책 6매)의 고문서들은 조선시대 지방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역사자료이다.
 
▲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염수당의 뒤편.
상촌마을에는 홰나무(槐木) 두 그루가 있다. 금주지(金州誌주:김해읍지)의 효경편에는 '안경지의 두 아들 훈정공 대진과 지정공 대임 형제는 효성이 깊고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마을 입구에 각각 한 그루씩의 홰나무를 심고 훈지정이라고 호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자손들은 후에 '훈지정'이라는 재각을 짓고, 두 분을 추모하면서 선조들의 제사를 받들고 효와 예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집성촌이다 보니 마을사람들의 단합과 협동도 남다
르다. 새마을운동이 한참 일어나던 시절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하나로 모인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전국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유정연 진례면장은 "효와 예를 후손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치고 마을사람들이 화합해 온 유서 깊은 상촌마을이 있어 진례면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를 지켜가는 것이 소중함을 다시 새기게 합니다"라며 상촌마을의 의미를 설명했다.
 
▲ 안봉환 씨 집 마당에는 경남도문화재 자료인 '염수당'과 '고문서' 안내판이 서 있다.
마을을 돌아 보다가 안병술(54) 씨 집에 들렀다. 부인 이은희(48) 씨가 만들어 판매하는 메주와 된장을 보러 온 손님이 와 있다. 상촌마을에는 메주와 된장을 팔고, 김장철에는 배추를 절여 파는 집들이 여럿 있다. 마을 단위의 큰 사업은 아니지만, 바쁜 농사일 틈틈이 시간을 내어 농가소득을 올리는 알뜰한 부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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