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골제 앞에서 바라본 아리랑문학관.

 

           ▲ 조정래 (1943년~)

삶의 터전 빼앗긴 민초들 사연
"사죄하지 않는 민족에 용서란 없다"

지구 세 바퀴보다 길었던 취재 길
역대 가장 무대 넓었던 대하소설

글 감옥 생활에서 나온 작품
독립 위해 흘린 피 공정한 평가




나라를 잃고 멀리 만주로 시베리아로 떠돌던 민초들의 사연을 기록한 문학 사랑방. 무논이 끝없이 펼쳐지는 만경평야를 무대로 시작되는 소설 아리랑을 기념하는 문학관은 전북 김제시 벽골제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붉은색 벽돌이 고풍스러운 문학관 전시실로 들어가면 초여름 푸른빛이 감도는 만경평야를 옮겨 놓은 사진이 걸려 있다.
 
징게맹게 외에밋들. '만경평야의 넓은 들'이라는 뜻을 담은 전라도 사투리가 적힌 사진 아래편에는 소설 아리랑의 한 대목이 적혀 있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있는 넓은 들녘을/ 어느 누가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 자리에서 헛걸음질하는 착각이 들었다."
 
총칼을 앞세운 발걸음으로 우리 민초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만경평야를 뿌리째 집어삼키려 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탐욕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글일까.
 

▲ 사람 키보다 높이 쌓인 원고지 앞에 손자와 함께 선 작가.

전시실 벽면에는 작가 조정래가 소설 아리랑을 쓰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았던 취재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땅을 군홧발로 짓밟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총칼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초들의 사연을 찾아 나섰던 작가 조정래. 멀리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에서부터 눈 덮인 시베리아 들판까지 우리 민초들과 독립투사들의 피 맺힌 사연들이 서려 있는 현장을 발로 뛰면서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고 남은 흔적을 확인하는 사진에서 작가의 열정이 엿보인다.
 
그렇게 시작된 취재 길이 '지구를 무려 세 바퀴나 돌고도 남는 거리'라고 했다. 그 바람에 역대 가장 무대가 넓었던 소설이 바로 아리랑이라고 했다. 과연 그 무엇이 작가 조정래를 그토록 기나긴 여정으로 이끌었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전시실에 걸려 있는 작가의 언론 인터뷰에서 나왔다.
 
"지난날 식민지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의 공이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정하게 대접 되는…"
 

▲ 소설 아리랑을 집필할 무렵 작가가 즐겨 입었던 두루마기와 생활용품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설계 또한 역사"라는 작가의 어록이 눈길을 끈다. 전시실 안쪽 유리관에는 작가가 직접 쓴 육필 원고지 1만 8000장이 전시되어 있다. 높이 2.5m. 작가의 소장품을 보여주는 전시관에는 삽화가 꼼꼼하게 그려진 취재 수첩과 노트 등이 놓여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세라믹 펜 심. 무려 1만 8000장에 달하는 원고지를 쓰는 동안 잉크가 말라버린 세라믹 펜 심들을 모아둔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민초들의 한과 눈물을 기록한 펜 심을 버리는 것은 작가의 영혼의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모아두었다"는 고백에서 소설가 조정래의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 있을 것인가?", "이제는 잊어버릴 때도 되었지 않았나!" 

1990년대 초반, 한 외국 언론인의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은 단호했다. 

▲ 초여름 벼가 자라는 만경평야. 쌀이 부족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수탈을 시작한 곳이다.

"사죄하지 않는 사람에게 용서란 없다"

그토록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 작가 조정래가 무려 5년에 걸쳐 민족사의 수난사를 기록한 소설 아리랑. 하지만 작가 본인은 그 기간을 '글 감옥에 갇힌 세월'이라고 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소설 아리랑이 주장하는 결론은 과연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변은 전시실 끝머리에 적혀 있는 작가의 어록이 대신했다.
 
"조국은 영원한 것이지 무슨 주의자의 것이 아니다."

김해뉴스 김제=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1길 24.
△ 남해고속도로(88㎞)를 타고 가다 통영·대전고속도로(87㎞)로 갈아탄 후 익산·포항고속도로
    (56㎞)로 갈아타면 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6시
② 매주 월요일, 1월 1일, 추석 및 설 연휴 휴관.
    063-540-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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