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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덕후가 들려주는 사람 이야기책(BOOK)
  • 수정 2018.12.26 10:04
  • 게재 2018.12.26 09:30
  • 호수 403
  • 13면
  •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neato@busan.com)

국내 유일 만년필연구소 운영자
만년필 관련 27개 에피소드 소개 
"펜촉에 담긴 '인문의 흔적' 매력"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색, 계'가 만년필 동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 탕웨이가 만년필로 편지를 쓰는 장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만년필에는 유선형의 몸체에 화살 모양 클립이 달려 있었다. 화살에 새겨진 펜촉으로 볼 때 1940년대에 파커가 제작한 버큐메틱이었다. 소품으로 사용된 만년필만 보고도 시대를 알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년필연구소를 운영하는 저자는 '만년필 탐심'에서 만년필이 처음 등장했던 시기에는 최첨단 휴대용품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우리 시대 변화를 이야기해주는 물건이지만, 100년 전에는 만년필이 그런 물건이었다. 만년필에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다.
 
책은 만년필에 새겨진 사람과 세상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여행기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사용한 펜에 관한 이야기, 히틀러가 사용한 만년필 추적기, 영국 여왕이 사용하는 만년필 등 27개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면 만년필에 새겨진 인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만년필 마니아다. 40년의 세월 동안 틈만 나면 만년필을 찾아 벼룩시장을 헤매거나, 취향에 맞는 잉크를 위해 직접 제조까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골방에서 종일 만년필을 써 보고 분해하기도 했다.
 
저자가 박목월 선생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년필을 우연히 고치게 되면서 10년간 그 만년필의 내력을 추적하는 대목에서 시선이 멈춘다. 2007년 11월 박목월 선생의 손녀가 만년필을 수리하러 저자의 연구소를 들렀다. 손녀가 건넨 몽블랑 만년필에는 '박목월선생(朴木月先生)'이 각인돼 있었다. 저자는 펜촉이 왼쪽으로 밀리듯 살짝 휘어진 점을 보고 박목월 선생이 왼손잡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만년필 덕분에 '박목월'이란 현대 문학의 거장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었고,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선생의 삶을 풍부하게 엿듣게 된다. 저자가 만년필이란 작은 물건의 힘을 깨닫고 만년필을 계속 사랑하는 이유다.
 
저자는 올 6월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문에 서명할 때 펜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많은 이들이 두 사람이 사용한 펜을 만년필로 예상했지만, 사인펜으로 흔히 부르는 펠트팁 펜이었다. 사인펜의 글씨는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쓴 것보다 짙고 선명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들은 대척점에 서 있지만 펜을 고르고 선택하는 것은 닮아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과시가 필요한 시대에 진하고 굵게 써지는 펠트팁 펜이 제격이었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이 낳은 저가 만년필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1929년 대비 1932년 파커의 매출은 32%까지 줄었다. 1948년에 나온 파커21은 이 심리에 걸맞았다. 파커21의 펜촉은 금이 아니었지만, 당시 가장 비싼 만년필 중 하나인 파커51의 3분의 1 가격이었고 품질은 거의 같았다. 사람들은 앞다퉈 파커21을 구입했고 덕분에 파커는 저가 시장을 평정했다. 1960년 파커는 파커21의 후속으로 더욱 완성된 만년필인 파커45를 내놓았다.
 
사실 만년필은 불편하다. 필기구의 왕좌 자리를 볼펜에 물려준 지 오래다. 실용성으로 보면 상대가 되지 않지만 여전히 만년필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만년필의 물성에 끌려 만년필 세계에 입문하더라도 만년필에 묻은 인문의 흔적에 빠지기에 손색이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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