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지난 10일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이모(고3·여) 양. 고등학교 3년 동안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자기관리도 잘해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능 가채점을 한 결과 예상보다 나쁜 성적 때문에 의기소침해졌다. 평소 밝게 잘 웃고 쾌활하던 이 양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고 잠도 제대로 못 이루며 입맛이 없어져 먹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다.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부모님과 선생님께 미안하고 친구들 보기도 두려워요."

#사례2=지난해 수능에 실패한 후 재수를 한 허모(20·남) 군. 원하던 대학에 떨어진 뒤 1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올해 수능 가채점을 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기쁜 것도 잠시. 왠지 모르게 주위의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알 수 없는 허탈감에 빠졌다. "이상하게 너무 피곤하고 친구들 만나는 것도 싫고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요." 수능 결과와는 정반대로 허 군에게 찾아온 건 일종의 무기력증이다.
 

2012학년도 수능이 끝난 지 10여일이 지나면서 이같은 '수능후유증'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고 있다. 초·중·고 12년 동한 공부한 결과가 수능시험을 계기로 종지부를 찍게 되자 성적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허탈감에 빠지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긴장감이 풀려 방탕하게 생활하거나 불안·우울증과 함께 열등의식에 빠지기도 한다.
 
진영한서병원 이국희 정신과 과장은 "수능 결과로 인한 실망감과 허탈감은 심적으로 큰 충격이 된다"며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이런 것들을 잘 감지해서 서로 이겨나가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수능후유증의 각종 증상
수능생들은 대부분 수능 전에는 건강관리를 잘 하지만 수능이 끝난 뒤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지속된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방탕하게 생활하거나 친구들과 지나친 음주 또는 그동안 관리하지 못했던 몸매를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과도하고 급작스런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폭식으로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또한 생체 방어기전이 무너져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거나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아 밤낮이 바뀌는 수면장애 등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면역기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우며 큰 병을 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대했던 성적보다 결과가 나쁠 경우엔 멍한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분노와 우울·죄책감 등이 뒤섞여 나타나기도 해 이같은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으면 의욕상실·수면장애·식욕변화와 같은 여러가지 증상들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이때 주위의 세심한 배려나 관심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할 경우 술이나 약물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해마다 이즈음에 충동적 자살 시도가 증가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들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 대응책과 치료
사람의 몸에는 '생체시계'가 존재한다. 그동안 수능 준비를 위해 짜놓은 일정 대로 생활한 몸은 갑자기 늘어난 자유시간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따라서 생체시계가 몸의 리듬을 바꾸는 데에는 일정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면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과도하게 잠을 몰아서 자거나 취침시간을 너무 앞당기려 하다 보면 오히려 수면 리듬이 흐트러지고 몸에 무리가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면시간 조정은 한 달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앞당겨야 한다.
 
수영·자전거·등산 등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적당한 운동이나 야외활동, 영화·연극 관람 또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식생활 습관 또한 중요한데 수능 후에는 운동을 하면서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고른 식사로 영양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이를 위해 당분간 라면·햄버거·피자 등 인스턴트 식품이나 탄산음료 등을 피하고 해조류나 신선한 녹황색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자세이다. 수능을 마친 후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음이나 폭식 등 자제력을 넘어선 행동을 하지 않도록 본인이 노력해야 하며, 부모나 가족의 주의 깊은 관심과 배려 또한 필수적이다.
 
수능후유증에 따른 각종 증상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지만 만성화되거나 심해지면 2~3개월 정도 지속되므로 초기에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이국희 과장은 "부모의 경우에도 수능후유증이 올 수 있다"며 "평소 스트레스에 취약한 외인성 우울증이 있는 부모는 자녀의 성적 결과에 따른 충격으로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므로 분노나 우울 단계가 2~3개월 정도 지속된다면 전문의를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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