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로왕 숭선전 명예 참봉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해환경 허홍준 대표가 제례문화 현대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참봉 추대 김해 허씨로서는 최초
제례 계승·가야역사 알리기 역점
"700만 종친 대표해 책임감 막중"

'나이 칠십에 능참봉'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이 칠십에 능참봉을 하니 하루에 거동이 열아홉 번씩'이라는 속담을 줄인 것이다. 70세의 노령에 마침내 왕릉을 관리하는 능참봉이라는 관직을 얻어 영광스럽기만 할 줄 알았더니, 잦은 왕의 행차 때문에 고된 일이 많다는 뜻이다. 능참봉은 9품 말직의 관직이지만 그만큼 일이 많다.
 
이달 초 김해 허씨로는 최초로 김수로왕 숭선전 명예 참봉으로 재추대된 허홍준(79) ㈜김해환경 대표는 요즘 이 말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본업인 환경 사업 외에도 제례문화와 가야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허 참봉은 "가락국 시조대왕의 능과 제례를 관리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전하라는 700만 종친의 염원을 등에 짊어지게 됐다"면서 "영예로운 자리이지만 책임 또한 막중해 나이 들고 불편한 몸이지만 부지런히 활동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실, 김수로왕 숭선전 참봉직은 해방 후 줄 곧 김해 김씨가 맡아 왔다. 명예직이긴 하지만 김해 허씨가 참봉을 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가 있지만 가락중앙종친회는 자손 수가 많은 김해 김씨 위주로 운영돼 왔었다"면서 "내가 명예 참봉에 추대된 이후 김해 허씨와 인천 이씨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허 참봉은 최근 숭선전 제례의 현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전통만 답습하는 형식적인 제례가 아니라 더 많은 종친들과 어린이, 여성 종친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진행되는 숭선전 대제에 3만 명의 자손들이 방문하지만, 제례에 직접 참여하는 인사들은 소수의 종친회 간부들뿐인 점이 안타까웠기 때문.
 
허 참봉은 "여성과 어린이들은 물론 일반 종친들마저 제례의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숭선전 외에 영전각 앞에도 제단을 만들고 일반 후손들도 분양할 수 있도록 해 김수로왕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례 현대화를 주장하는 허 참봉의 목소리는 단순한 말 잔치가 아닌 듯하다. 그는 집안 제사를 오후 7시에 지낸다. 제사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어린 아이들도 제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전통 계승이 반드시 형식만을 답습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허 참봉은 "지킬 만한 것은 승계해야 하지만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참봉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일은 가야사 및 김수로왕과 허황옥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그는 명예 참봉으로 추대되기 이전부터 각종 일간지와 종친회보 등을 통해 관련 글을 활발히 기고하는가 하면 인터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허 참봉은 "찬란한 철기문화를 꽃 피워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군림한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제4국으로 다뤄져야 함에도 삼국 중심의 역사관에 의해 잊혀진 왕국이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또 "건국 초기 가야는 사실상 김수로왕과 인도 출신 허황옥이 공동으로 통치한 나라였다고 판단된다"면서 "외국 문물에 대한 개방성과 양성 평등 등 현대에 계승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 풍성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노환으로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꼬박꼬박 사무실에 출근하는 허 참봉은 신문 만큼은 꼼꼼히 챙겨 읽는다. 필요한 기사는 스크랩까지 해 둔다. "숭선전 제례를 현대적으로 계승해 죽기 전에 대한민국 제례문화의 새 장을 열고 싶다"는 여든 살 노인의 혈색이 유난히 붉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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