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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빛낸 스포츠 ★들 체전 유치 소망 보탠다2030 전국체전 유치 기원
  • 수정 2019.01.15 15:53
  • 게재 2019.01.08 14:31
  • 호수 405
  • 5면
  • 조나리 기자(nari@gimhaenews.co.kr)

지난 20년간 급성장해온 김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체육을 대표하는 체육인을 배출해왔다. 김택수 전 대한체육회 회장, 홍상표 장대높이뛰기 동메달리스트, '월드컵 1호 골'의 주인공 박창선 감독은 한국 체육의 역사의 큰 줄기를 만들었다. 현재 '슈퍼루키' 최혜진 프로골퍼를 비롯해 창단 이후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는 김해시청 하키팀, 최근 상승세인 축구팀 등 김해 체육인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김해시는 올해 역도·사격·볼링·태권도팀을 창단할 예정이어서 김해 체육의 미래는 밝다. 이와 함께 시가 2023년 제104회 전국체육대회를 유치하게 되면 김해 체육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2023년 전국체전 유치를 소망하는 지역의 염원을 모아 김해를 빛낸 체육인들을 알아본다.


 


한국 4번째 IOC위원, 88올림픽 성사 노력

김 택 수  한국 체육 발전 밑거름이 된 전 대한체육회장
 

김택수(1926~1983) 전 대한체육회 회장은 한국 체육 발전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김 전 회장은 김해군 명지면(1978년 부산시에 편입)에서 태어났으며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경남고 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했던 김 회장은 1961년 경남체육회장을 시작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게 돼, 1966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 겸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 1971년 제24대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79년 대한체육회 회장 퇴임 때까지 삿포로동계올림픽, 몬트리올올림픽,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 등을 이끌며 한국 체육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몬트리올올림픽 때는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 등으로 1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선 체력 후 기술'을 강조하며 태릉선수촌의 급식을 영양식으로 바꾸고 숙소와 훈련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힘썼다. 후진 양성과 유망주 조기 발굴을 위해 전국소년체전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또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사기 진작을 위해 체육연금 제도도 창안했다.

이뿐 아니라 김 전 회장은 1977년 한국인으로서는 4번째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88서울올림픽 성사를 위해 애썼다. 안타깝게도 그는 88올림픽 전 세상을 떠났지만 올림픽 유치에 큰 공을 세웠다.

한일합섬을 창건한 김한수 회장의 동생이기도 한 김 전 회장은 1970년부터 제6대·제7대·제10대 고향인 김해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 신기록 17회, 장대높이뛰기 전설

홍 상 표  ‘한국 장대높이뛰기’의 전설

 

홍상표 전 부산육상연맹 부회장은 한국 장대높이뛰기의 살아있는 역사다.

1944년 김해읍 강동(현 칠산 서부동)에서 태어난 홍 부회장은 김해 동광초등학교, 김해중학교, 김해농업고등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를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달리기꾼'이었던 홍 부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까지 3㎞를 매일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는 여름 장마철마다 홍수가 심했던 고향 마을에서 대나무 장대를 잡고 개울을 건너 뛰어다니던 게 장대높이뛰기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마라톤 선수로 처음 육상에 입문한 뒤 멀리뛰기, 세단뛰기를 했으며 김해농고에 진학하면서 학교 선배를 따라 본격적으로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데뷔하게 됐다. 가난한 형편에서 자란 홍 부회장은 "장대만 열심히 넘으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운동에 매달렸다고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김해농고를 졸업한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전국체전을 12연패했다. 또한 1965년 전국체전에서 3m 86을 넘어 처음으로 한국기록을 깬 후 1971년 자신의 최고기록인 4m 72를 넘을 때까지 17차례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1966년, 1970년 제 5, 6회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연속 동메달을 따내며 장대높이뛰기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이름을 알렸다. 이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1970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한체육회의 지원으로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6개월간 유학을 하기도 했다.

홍 부회장은 현역 은퇴 후 1983년부터 1996년까지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경기본부장과 육상경기 운영본부장을 맡으며 체육 발전과 후배 양성에 힘썼다.
 



국가대표 출전 8골, 축구 꿈나무 ‘대부’

박 창 선  한국 월드컵 1호 골의 주인공
 

"골! 골! 한국 월드컵 사상 첫 골입니다!"

월드컵 무대에서 0대 9, 0대 7로 대패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던 대한민국이 1986년 두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 무대에서 첫 골을 넣었다. 세계적인 '축구스타' 마라도나가 속한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나온 중거리 슛은 박창선 감독의 발에서 터졌다.

1954년 김해에서 태어난 박창선 감독은 김해 합성초등학교, 김해중학교, 동아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는 유년 시절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등학생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알게 돼 뒤늦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경희대학교 졸업 후 1977년 실업팀인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했다. 1983년 프로축구리그 창설 이후 할렐루야 독수리, 대우 로얄즈, 유공 코끼리에서 MVP, 베스트11, 득점상 등을 차지하며 기량을 뽐냈다.

또한 박 감독은 1979~1986년 국가대표로 32경기에 출장해 총 8골을 기록했다. 1986년 국가대표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월드컵 첫 골을 기록했으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선수 은퇴 이후에는 프로리그 감독,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 감독, 모교인 동아고 축구부 감독, 경희대학교 축구부 감독 등을 역임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김해에서 인재를 육성해 국가대표 선수를 키워내고 싶다"며 2010년 김해에 돌아와 박창선 축구클럽을 창설하고 유소년 선수들을 양성하고 있다.
 



세계 랭킹 1위 꿈꾸는 ‘골프 천재’

최 혜 진  ‘슈퍼루키’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선수
 

1999년생 앳된 김해 출신의 소녀가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에서 승리하며 '무서운 신인'으로 부상했다.

'슈퍼 루키'로 불리는 최혜진 선수는 아버지를 따라간 골프장에서 골프의 매력을 느끼게 돼 김해동광초 3학년부터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부산 학산여중, 학산여고를 거쳤으며 중학교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2015년 세계주니어선수권 개인ㆍ단체전 2관왕, 2016년 세계아마추어선수권 개인 및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2017년 시즌 아마추어 신분으로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오픈, 보그너 MBN여자오픈 등에서 2승을 거뒀고, 미국 US여자오픈에서 깜짝 준우승을 하며 '골프 천재'로 떠올랐다.

이어 KLPGA 2018시즌 개막전인 효성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사상 최초로 신인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어린 나이지만 단단한 정신력과 시원시원한 플레이로 최 선수는 많은 골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골퍼 기대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최 선수는 세계 랭킹 1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을 선수 생활의 목표로 하고 있어 지역과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최혜진 선수는 모교인 동광초에 발전기금 2000만 원을 기탁하고 진로특강을 열기도 했다. 최근 최 선수는 김해시의 2023 전국체전 유치를 기원하는 영상 메시지를 보내며 지역 사랑을 나타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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