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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 우리는 누구?나침반
  • 수정 2019.01.11 14:46
  • 게재 2019.01.09 09:08
  • 호수 405
  • 19면
  •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report@gimhaenews.co.kr)
▲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몇 년 전 밤늦게 버스로 귀가 도중 깜박 졸다 깬 적이 있는데, 위치 확인을 위해 창밖을 내다본 순간 외국인 줄 알고 당황했다. 신규 대형 복합상가건물 전면이 거의 외국어간판 천지에다 출입구조차 'GATE'로 적혀 있다 보니, 어이없게도 비몽사몽간 착각한 것이다. 한편 중노년층이 주 고객인 화장품가게에서 알바를 할 때였는데, 한글 설명 없이 'PUSH DOWN & TURN TO OPEN'만 달랑 적혀있는 안전뚜껑을 열 줄 몰라 난감해하거나 온통 익숙잖고 어려운 외국어 상품명 발화에 주뼛대는 손님을 종종 접하며 안쓰럽고 화가 치민 적도 많았다. 어머니가 외국어 카페간판을 읽지 못해 약속장소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며 속상해하던 한 지인의 하소연은, 영어로만 표기된 전시관 간판에 뭐라 써있냐는 아이의 물음에 모르겠다고 답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린 분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난 애국자도 우리말지기도 아니지만, 이런 누적된 경험들 탓인지 '일상 속 외국어 사용 문화'에 조금 더 민감해진 듯하다. 이미 외국어 일색의 카페이름이 즐비한 율하에서 최근 'STEAK FERMENTE'라고만 쓰인 숙성고기전문점 불어간판까지 발견하고 나니, 사회구성원 일부를 눈뜬장님 만드는 저급문화가 더 일상화된 것 같아 과거 기억들까지 소환되며 무척 씁쓸해졌다. 무슨 외국어 단어 맞추기 퀴즈도 아니고 이런 같잖은 사회 분위기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데, 단순한 외국어범람의 차원을 넘어 '차이에 대한 배려 및 알 권리'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 나듯 찾기 어려워진 우리말 간판이나 광고, 경쟁하듯 이국적인 이름이 가관인 아파트명, 뉴스를 포함 외래어가 난무하는 대중매체, 한글 사용을 선도하기는커녕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외국어 혼용과 남발로 얼룩진 공공언어 등, 우리 언어 사용의 실태와 현주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외국어=세련됨, 고급스러움, 신식' '한글=촌스러움, 구식'이라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어렵고 불친절한 전문용어투성이 법전, 설명서, 공문서, 정책용어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비용이나 손해 역시 엄청나다 한다. 이렇듯 뜻 모를 외국어나 난해함이 야기하는 각종 '해독불가능성'은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자국민들에게는 일종의 벽 같은 '언어갑질'로 작용함으로써, 제공되는 공공정보를 자국어로 정확히 이해할 기본권을 침해하고 소통을 가로막으며 소외감을 부추기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세계 제1공용어인 영어의 장악력과 위협은 외교실무언어로서의 프랑스어의 위상조차 흔들어놓을 만큼 거세지만, 프랑스는 '자국어 보호법 및 풍부화정책'을 통해 악착같이 언어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외국어를 대부분 비슷한 발음과 뜻을 지닌 한자로 바꿔 표기한다. 영국은 '쉬운 영어 쓰기 운동'을 통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전달을 위해 30년 넘게 힘써오고 있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수단 그 이상으로 '우리의 사고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이며, 언어정보의 명확한 파악 없이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제대로 지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학적 우수성 덕분에 다른 언어 표기문자로 선택되기도 하고 '현대적 조형미'로도 세계 유수 디자이너들의 주목을 받는 한글이 유독 본토에서 괄시받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민관 합심 하에 한국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간판 한글화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내외국인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서촌 일대는 좋은 선례를 보여준다. 한글박물관이 곧 건립될 예정인데다 가야사 복원의 과제 또한 안고 있는 역사문화도시 김해, 특색 없는 어설픈 외국어가 판치는 거리보다 차별성이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우리 것'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화하려는 정책적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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