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바로 잡겠다는 의지
한반도 상황에 무거운 교훈



'하느님이 원하신다!' 1096년 시작한 십자군 전쟁의 구호이다. 중세봉건 제도를 근본부터 흔든 이 전쟁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도발적인 연설로 출발한다. 1095년 11월 27일 프랑스 중부의 도시 클레르몽에 있는 넓은 들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곳의 연설에서 교황은 이처럼 운을 뗀다. "내가 무슨 슬픈 사연으로 여러분의 땅에 왔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어서 그는 하느님이 버린 이방 족속 무슬림이 기독교인의 땅인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현지 주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대중을 부추긴다. 많은 사람이 살해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부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우르바누스는 들판에 모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를 일깨우려고 한 것이다.

이로부터 4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서방의 기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했던 예루살렘 성벽 밖에 캠프를 치고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 도시를 점령할 태세를 취하게 된다.

저자가 이 광경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교도의 만행을 단죄하려는 교황의 단호한 의지와 그를 따르는 기사단의 신앙심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전쟁의 실제 원인이 다른 데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장치이다. 반전 효과를 높이는 서술 기법이라고 여겨진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당시 동로마 즉 비잔티움의 황제인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이다. 이 책은 십자군 전쟁의 촉매제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를 주목한다. 왕위를 찬탈해 권력 정통성이 약한 데다 동시다발적 외세 침략으로 내우외환을 앓고 있던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알렉시오스 황제가 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서방 군사력의 예루살렘 진출이란 묘수를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르바누스 교황은 왜 알렉시오스 황제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일까. 그때 두 명의 교황이 옹립된 상황이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교회 내의 입지 강화가 절실한 교황이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 회복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는 게 글쓴이의 해석이다.

'동방의 부름' 은 이외에도 지나치게 기독교 시각으로 치우친 십자군 전쟁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또 자신의 힘이 아니라 외세를 끌어들여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굴욕스러운 일인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무거운 교훈을 던진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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